| - 게시물제목 : 재즈를 공부한다? |
1,665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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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름 : 장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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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4 - 등록 |
* 이것 역시 다른 곳에 썼던 글입니다. '음악 게시판' 만들라고 재촉한 것은, 음악을 듣다가 느꼈던 것, 연주회를 준비하다가 느꼈던 것, 그냥 혼자 기타 치다 느꼈던 것을 자유로이 쓰라는 의도였는데 정말 '데이타베이스' 게시판처럼 생각들 하나봐요...
어떤 분의 홈피에 가서 재즈의 역사에 관한 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웬만큼 알긴 하지만 그렇게 정리해서 보니 새롭더군요.
그러면서 여러 가지 잡념이 들었습니다. 대개 재즈 관련 동호회 게시판에는 재즈의 역사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지요. 하지만 전 그런 것을 올리지 않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안 올릴 겁니다.
첫째, 저 자신 그다지 정리해서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별로 새로운 글을 쓸 수 없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올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둘째, 그게 그렇게 필수적인가 하는 괜한 반항심리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것에 있어 '역사'와 '계보'를 따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음악 본질 자체는 얼마나 생각하고 있을까요? 정말 중요한 것은 소홀히 하면서 형식적인 것에 집착하는 나쁜 버릇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90년대 초중반, 한창 록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일환처럼 여겨질 때 예전에는 록을 부르조아의 퇴폐문화라고 욕하던 지식인들이 갑자기 록을 저항문화의 상징이라고 부르짖으며 나섰습니다. 정말 박쥐 같은 인간들입니다. 그들이 한 짓은, 역시 록의 계보와 역사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록 자체를 모르면서 그걸로 록을 안다는 듯 떠드는 작자들... 그리고 거기에 부화뇌동한 여러 사람들...
보통 때는 '듣기 좋은 게 좋다'라고 말하면서도 꼭 역사와 계보를 따지는 게 우리나라의 음악 애호가들이지요. '듣기 좋은 게 좋은 거'니 그런 거 안 따져도 상관없습니다. 아, 그렇다고 그런 것이 완전히 쓸데없는 거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 정도를 알고서 '나는 재즈를 잘 안다'라고 착각하는 태도가 잘못된 것임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어떤 이들은 숫자로 밀고 나서기도 하죠. 시디가 수천 장이라느니,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뮤지션 이야기를 떠벌이며 상대방 기를 죽이려 하고... 그게 음악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단 한 장의 시디를 들어도 정말 본질에 접근하는 사람에 비하면 천박한 속물 근성일 뿐이지요.
미국에 오래 머물고 있는 형이 얼마 전 잠깐 귀국했는데 그러더군요. 원래 재즈는 댄스 음악이라고. 재즈는 근본적으로 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이고 재즈 형식 자체도 그에 따라 발달했던 것이라고. 어떤 나이 많은 뮤지션은 그렇게 불평했다네요. '요즘 놈들은 도대체 몰라. 왜 밴드가 중간에 느리게 연주하는 줄 알기나 하나? 춤을 추다가 쉬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어떤 이는 하드밥에 맞춰서도 춤을 출 수 있다며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답니다. 어쨌든 모든 음악은 춤, 노래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관점에서 음악을 접하지 않았었죠.
만약 지적으로 음악을 접하고 싶다... 그렇다면 음악 자체를 공부하세요. 화성법을 배우고 선법을 공부하세요. 그걸 모르면서 '재즈를 안다'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역사를 외우고 뮤지션 이름을 외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모드 주법을 개발했다는 건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지만 정작 모드 주법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모드가 코드 주법과 어떻게 다른지 개념이 없습니다. 이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재즈 음악을 듣다가 '왜 이 사람 음악과 저 사람 음악은 저렇게 다를까? 이 시기 음악은 왜 내 귀에 잘 안 들어올까?' 등의 의문이 떠오른다면 역사를 공부하세요. 그때 비로소 재즈의 역사는 내 것이 됩니다. 그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재즈를 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재즈를 잘 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나는 재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게 우선입니다. 솔직히 잘 알 필요도 없지요. 잘 아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재즈는 공부를 많이 해야 알 수 있는 음악입니다. 역사 몇 줄 외워서 '알 수 있는' 음악이 아닙니다.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저는 재즈 교본, 이론서들을 잔뜩 사 놓고 수년 동안 낑낑거렸지만 도대체 감이 안 잡혔습니다. 최근에 책을 보다가 갑자기 그 어려웠던 이론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면서 이해가 되지 않던 까다로운 이론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제서야 '조금 아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 겁니다. 재즈라는 음악 자체가 왜 그렇게 이루어지고 그렇게 연주되는지 이해하기 시작한 정도지요.
하지만 감히 재즈를 안다고 말하기는 싫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기도 싫습니다. 우선은 좋아하는 게 중요하지요. 느린 음악, 보컬 음악, 보사노바, 프리재즈, 퓨전 재즈, 하드밥.... 어떤 것이라도 편견을 갖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면 역사 따위를 줄줄 외우고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이 아는 것입니다. 재즈를 분위기 있는 음악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하드밥이 어떻고 웨스트코스트 재즈가 어떻고 말해 봤자 무의미한 일이죠. 어차피 거기 맞춰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 하는 사람일 텐데.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을 적셔야 한다는 서양 속담이 있죠. 수영하려고 수영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역사를 공부하면 수영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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