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시물제목 : 나의 기타 이야기(1) |
2,358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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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름 : 장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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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7 - 등록 |
* 솔직히 별로 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내가 재촉해서 이 게시판을 만든 꼴인데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의무감으로 쓰게 되네요. 대단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느낀 것을 주절주절 말할 수 있는 게시판이라고 생각하고 자유롭게들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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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렸을 땐 음악에 관심이 없었다. 음악 시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노래를 시키면 정말 지옥과 같은 기분을 느끼며 바들바들 떨었다. 노래를 시켰는데 부르지 않고 버텨서 선생님한테 혼난 적도 있었다.
대신 피리, 캐스터네츠, 탬버린, 트라이앵글, 실로폰, 멜로디온, 멜로디카 등을 연주하는 시간은 재미있었다.(그러고 보니 나도 꽤 많은 악기를 다룰 줄 알았군) 친구들 중에는 만화영화 주제곡을 열심히 피리로 부는 아이도 있었고 그에 자극받아 나도 열심히 계명을 연구한 적도 있었다. (그때 열심히 할 걸... 이게 바로 '카피'인데)
내가 최초로 작곡한 곡은 '미미파솔~ 도도레미~ 라-라솔파미~ 미미파솔~ 도도레미~ 솔-파미레도'였다... 음악 숙제로 한 것이었다. 음악 시간에 다 같이 노래할 땐 친구와 함께 가사 바꿔 부르기, 목소리 떨며 부르기 등 장난을 많이 쳤었다.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옆집에서 하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여자애들이 더 많고 당시만 해도 피아노 치는 남자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눅이 들어서 그다지 열심히 하진 않았다. 열 번 연습해 오라고 하면 두 번 연습하고 그런 식으로... 부르그뮐러나 소곡집은 재미있었지만 하논, 바이엘, 체르니는 영 싫었다. 결국 체르니 100번까지 끝낸 다음 그만뒀다. 어쩌면 누나나 형이 체르니를 열심히 치는 소리가 너무 지겨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피아노를 팔았고 난 피아노를 칠 일이 없었다. 사실 어릴 땐 미술이 제일 좋았다.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을 늘 들었고 만화 그리는 것이 가장 큰 취미였다. 아버지께서 학생들 낸 리포트 채점하시면 꼭 내게 갖다 주셔서 그 뒤에다 열심히 내가 창조한 주인공과 이야기를 그려댔다. 나중에는 혼자 궁리 끝에 입체만화와 애니메이션도 시도를 했었지만... 지금도 그때 내가 만든 주인공들을 '로봇백과' 식으로 모은 수첩이 있다.
하지만 난 색약이므로 절대로 미술 쪽으로 갈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중학교 올라가자 이상하게 만화 그리는 일이 더 이상 재미가 없는 것이었다. 대신 FM을 열심히 들었다. 국민학교 6학년 겨울부터 듣기 시작했는데, 그땐 아침에 눈 뜨자마자 라디오를 켜서 밤에는 슬립장치 걸어놓고 잠이 들었었다.
팝송과 영화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중1때는 사이몬과 가펑클을 제일 좋아했었다. 공테이프 사다가 열심히 녹음도 하고... 영화음악책을 샀는데 악기가 멜로디온밖에 없었다. 많이 불면 머리도 아프고 침도 많이 나와 안 좋았다. 처음으로 피아노가 아쉬워졌다.
처음 기타 소리에 매력을 느낀 것은 언제였을까? 어릴 때 소년중앙에는 이런 소설도 실렸었다. 한 소년이 선물로 기타를 받아 열심히 연습했는데 아버지가 담배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머리를 지저분하게 기른 채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자 충격을 받는다.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소년은 굳게 결심하고 면도칼을 가져다가 기타줄을 하나씩 끊는다. 하나가 끊어질 때마다 '퉁'하는 소리가 나는데 소년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다 끊는다.
어쨌든, 사이먼과 가펑클의 '스카보로 페어'나 '복서', '아이 엠 어 록', '에이프릴 컴 쉬 윌' 같은 곡에서 들리는 기타 소리에 끌렸던 것 같다.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도 그랬고.
결국 중1 때 '이번 시험 1등 하면 기타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 1등은 못 했지만 부모님은 기타를 사주셨다. 화양리에 있는 세고비아 총판점이었는데, 19000원 주고 세고비아 선버스트 통기타를 산 것이다. 클래식을 살까 포크를 살까 망설이다가 포크를 골랐는데 나중에는 좀 후회를 했었다.
혼자 책 보고 연습을 하다가 결국 여름방학 때부터 기타를 산 곳에 가서 배우기 시작했다. 교습비는 15000원이었다. 왈츠, 슬로우, 고고, 비긴, 칼립소 등의 리듬과 '여고시절', '나', '오솔길' 등의 곡을 배웠다.
처음 기타를 사서 책에 있는 대로 잡고 손가락으로 치기 시작하자 얼마 안 가서 왼손 끝과 오른손 엄지에 물집이 잡혔다. 너무 아파서 반창고와 솜을 가져다 붙였더니 어머니께서 한 말씀 하셨다.
'내가 젊었을 땐 가야금을 배웠었다. 그땐 정말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였다. 네가 정말 기타를 배우고 싶다면 그 정도는 이겨내야 한다. 반창고 붙이고 어떻게 기타를 배우겠다는 거냐.'
그래서 당장 반창고를 뗐다. 아픈 것을 참고 연습을 했다. 그때부터 하도 열심히 쳐서 지금도 왼손가락 끝에는 움푹 파인 자리가 남아 있다. 우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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