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시물제목 : 음과 악 그리고 연주에 대하여... |
1,774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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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름 : 박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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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20 - 등록 |
작년 1년 동안 수강했던 음대 국악과의 화성법 선생님이 이런 얘길 한적이 있다.
그 선생님은 한마디로 정말 감정이 풍부한 것 같은 분이었다.
감정에 취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고,
감정표현이 많고, 항상 뭔가 들떠있는 것 같은 그런...
다만 그걸 주체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다 전하지 못하고
그냥 혼자만 신이 나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은 그런...
어쨌건, 그 선생님이 해준 얘기중에
멋지다고 생각한 얘기가 하나 있었다.
역시 음악을 전공하셨던 아버지께서 해준 얘기였다는데,
음악이란 뭐냐?
'음'과 '음'을 '악'이라는 실로 엮어 놓은 것이야.
악이란? 음에 담겨있는 의미, 즐거움, 감정, 이런 것들이다.
대충 이런 말이었다.
꽤나 그럴듯한 얘기라고 공감 했었다.
하지만 상황도 좀 어수선 했고 해서,
그런 의미심장하고 멋진 말을 한것 치고는,
뭔가 반응이 조금 약하기는 했지만....
의미가 담긴 소리, 감정이 담긴 소리,
흥이 담긴 소리...
그게 음악이란 얘기.
그리고 음악을 연주할 때는,
감정을 담아서 연주를 해라.
흥을 담아서 노래 불러라.
이런 얘기...
어쩌면 당연한 얘기이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것 같다.
이런 사실을 깜박 잊고 있을때도 있다.
그리고 또 어려운 문제는
과연 그냥 소리와 "악"이 담긴 소리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나역시 그 차이에 대해서 나만의 답을 가지고 있다라고
자신있게 얘기 할수가 없다...
... 아마도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항상 고민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 "악"을 어떤 느낌인지는 아마 누구나 느껴 보았을 것이다.
아주 일상적이고 간단하게,
내가 오늘 아침과외를 끝내고 나오면서,
노래 하나 흥얼거리다가, 뭔가 기분이 좋으면 악을 느낀 셈이다.
평소에는 식상하게 들렸고, 대충 치던,
순서적 연습곡 1번.
어느때인가, 길을 가다가,
"자 오늘은 좀 차분하고 우아하게 노래를 읖조려 보는건 어떨까?"
(이곡의 악상은 Andantino grazioso 이다)
대충 이런 마음으로, 침착하게 첫음 부터 읖조리기 시작해 본다.
짠 자~잔~~ 짠 자잔~~
여기 까지 왔을때,
"이 곡이 이렇게 멋지게 흘러가는 거였다니..."
"자, 다음은 어떻게 전개시켜 가야 이 멋진 느낌을 계속 유지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그 다음 부분을 조심스럽게 음을 메꿔나가 본다.
음 하나하나가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곡은 절정에 이르고, 곡을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난 상당한 만족감을 느끼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 이 느낌 이구나...!"
그 때의 기분은 아마도 내가 고전파 음악의 느린 악장을 들었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예를 들면, 하이든의 세레나데17번 2악장이나,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직 2악장 ....
그때 내가 길거리에서 입으로 읖조렸던 그 순서적 1번,
그건 내가 아무렇게나 치던 순서적 1번과는 뭔가 달랐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그게 객관적으로 얼마나 멋진 연주였는지는 몰라도,
주관적으로 볼때, 내게는 최고의 연주였고,
악이 담겨있는 연주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음악을 느낀다고 하는 건,
그때 그때의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음악을 들을 때도 그렇다.
똑같은 CD의 똑같은 곡인 데도, 어떤때는 짜릿한 감동을 느끼고,
어떤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때 난 아마 상당히 음악에 취해있는 상태였을 거다.
그때 내가 그 읖조림을 녹음해 놓고, 나중에 들었을때,
악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악을 느낄 가능성이 큰 연주이고,
그런 스타일의 곡에 있어서의 최적에 가까운 연주중의 하나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때 우연히 나왔던, 그 멋진 느낌을 표현 하는 방법을 연습해서,
무대위에서 연주가 그 연주에 좀 더 근접하게 된다면?
멋진 연주였다는 박수를 받지 않을까.
음악을 혼자 읖조리다가, 기타를 치다가, 감동을 느낀다는것은
참 멋진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멋진 일은, 그걸 듣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느끼는 거다.
내가 하고 있는 연주를 듣고, 내가 감동을 느끼고,
동시에 다른 사람도 그와 비슷한 감동을 느낀다는 사실.
연주자의 마음과 듣는 사람의 마음이 통하고 있다는 기분.
내가 내고 있는 소리가, 다른사람에게 받아 들여지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런 느낌은 연주자에게는 혼자 치는 것보다 더 많은 즐거움과
흥분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함께 웃는 기분,
나의 말이 내 말을 듣는이에게 흡수되는 것같은 느낌과
비슷한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예전에 독주 준비를 하면서, 내가 무대위에 올라서서 그런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감동시켜야 한다.
아무런 감정의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서,
난 기타를 치고, 그 음을 듣고, 내가 감동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연주하는 음에는 "악"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왈츠라면, 춤을 추고 싶을 것 같은 "흥"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했었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설득하는 작업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관중석에서 사람들이 듣고 있다.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들을 것이고,
누군가는 "얼마나 감동적인 연주를 할까..." 잔뜩 기대하며 들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 어디 한번 감동시켜봐!"라는 마음으로 듣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아마도 사람에 따라 설득하기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할것이다.
난 음악을 연주하면서, "내 음악은 이런 감정을 담고 있으니 내 기분에 동참해 주시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한 패거리가 풍물을 친다면, 그사람들은,
"당신들도 우리의 흥겨움에 동참하는게 어떠시오?"라고 설득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연주자의 성패는 얼마만큼 관객들을 곡의 분위기로 설득시키느냐 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독주할때, 외부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은 적이 있는데,
"슬픔의 쇼로"를 칠때,
"슬픔을 가지고 친다"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소리를 낸다" 라고 생각해라.
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곧, 슬픔을 느낄만한 설득력이 담긴 소리를 내라는 얘기이고,
그 소리를 내가 듣고, 혹은 다른 사람이 들으면서 슬픔을 느껴야 한다는 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꾸면, 무작정 슬픈 기분을 가지고 있다고,
누군가 듣기에 슬픈 노래가 나오는 것만은 아니란 얘기 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혼자 흥에 겨워서 노래를 부르고,
마구 춤을 추지만,
주변에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건 받아들일 수 없는 "발악"으로만 비칠수도 있는 것이다.
설득력이 없는 노래와 춤이랄까.
정말 뛰어난 연주자라면, "어디 한번 감동시켜봐!"라고 버티면서 듣는 사람까지 감동시킬 것이다.
괜찮은 연주자라면, 그냥 아무생각없이 듣는 사람을 감동시킬 것이고,
그리고 이미 그 곡에 대한 감정이 취해 있는 사람이거나, 곡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사람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그건 실패한 연주자일 것이다.
난 한때는 "감정없는 연주"라는 평가를 듣는 것에 대해 상당히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1학년 때는 손만 잘 돌아가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언제 부터 인가, 내 연주에 "감성적이고 느끼한 곡에는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연주"
"미디같은 연주", "노래부르는 것 같지 않은 연주"
이런 평가가 붙을 때는 참 심각했다.
"역시 난 그런 걸까."
"역시 성격탓일까."
이렇게 체념하기도 하고,
"아닌데. 나도 혼자 칠때는 온갖 감정에 사로잡혀 멋진 연주를 하곤 하는데.
그때 무대에서 너무 마음이 위축되서 그랬던 거다."
라고 반발심을 품기도 하고,
"그냥 내 스타일은 이런거지. 연주자마다 스타일이 있는거야"라고 위안하기도 했다.
분명 나의 스타일은 그렇다.
난 개인적으로 연주에다가 "느끼하다"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 자체도 그리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그런 연주를 하는것, 듣는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주위 사람들도 어느정도 동의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내 스타일에 가장 어울리는 곡은 고전적인 곡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은 연주자의 개성을 논하기엔
난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드러내는 걸 꺼려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연주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게 하는, 감동을 주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어느 때인가 혼자 기분좋게 연주할때의 우연하게 나온, 그 감동을 느끼게 하는 방법을
표현할 줄을 난 모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연주의 개성을 따지기에, 나의 기량이 많이 모자란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스타일이야"라고 막아버리기엔,
나는 연주자의 길에 있어서 난 초짜이고,
그 감동을 주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것이 내가 앞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난 아직 음악에 대한 경험이 너무 부족하다.
일제형이 언젠가,
"어차피 사람은 자신이 많이 들어보고 많이 쳐본 스타일의 곡을 잘치게 되어있어."
라고 말한 적이있다.
자신이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곡이 분명이 있고,
그러한 곡이 아닐지라도, 그 외의 다른 스타일의 곡도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소화해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것이다.
연주자가 타고난 끼라는게 있으면 있을수록 유리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게 따지면, 난 타고난 연주자는 아니다.
그리고 독주 준비를 하면서, 타고난 연주자 체질을 가진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 했는지 모른다.
그런 타고난 끼뿐만아니라, 손이 돌아가는 감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감각이 탁월한 사람들을 위해 직업 연주자라는 길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감각이 부족한 나로서는, 독주연습을 하면서,
테크닉 면에 있어서나, 표현의 방법의 면에 있어서나,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한마디로,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이런 방법으로까지 노력할 필요가 있나"
라고 느낄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다.
난 다만, 혼자서 연주하다가 내 연주가 멋있을때 즐거움을 느끼고,
가끔은 내 연주를 듣는 몇명의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느낄수 있는데
만족하는 연주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단정짓는 다고 해서,
나의 고민이 아직 완전히 해결되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잠정적인 결론일 뿐.
난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연주란, 뭐냐라고 물었을때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집중해서 음악속으로 빠지도록 만드는 연주.
마치 연주를 하고 있는 공간에서 사람들을 모두 옮겨서,
음악이 창조해낸 환상의 공간속으로 옮겨놓는 연주.
연주의 시작부터 끝까지 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연주.
그런 연주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마법에 비유한다면,
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는 마법의 주문을 만드는 사람이고,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를 마법사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곡가가 만들어 놓은 "음악의 세계"로의 소환마법의 주문을 가지고,
연주자는 관객들에게 주문을 외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문이 성공하면,
사람들은 이제 연주회장이라는 공간을 잊어버리고,
음악이 만들어 놓은 멋진 공간속을 헤메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음악이 끝난후에도 그 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여태까지 연주회를 들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몇번 있었다.
그럴 때는 음이 마치 그 방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물론, 이런 연주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나 스스로 여기에 얼마나 접근했는지는...
따지지 말기로 하고...^^;
이런 거창한 글을 썼다고 해도,
나 역시 기타 이제 겨우 4년 친, 그냥 연주자로서 초반에 있는 한 사람일 뿐이니까.
아침에 과외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노래를 흥얼 거리다가,
갑자기 평소에 해왔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것 같아서,
필을 받아(?) 내키는 대로 적어 봤다.
마지막으로, 연주회를 준비하는 후배들은,
특히, 테크닉적인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그냥 그 상태에서 안주하지 말고,
(물론, 여유가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음악이란 무엇인지,
이상적인 연주란 어떤 것인지,
거기에 대한 해답을 자기 나름대로 표현해 보고,
그 이상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를
연주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느낄 수 있다면... 멋진 일일 것 같다.
"음악은 소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 그 무엇이다."라고 말한 그 화성법 선생님의 말이나,
하진형이 말한, "음악 또는 예술은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형이상학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기억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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