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시물제목 : 장경현선배의 『나도 팀과 편곡에 대해 한 마디...(상급자 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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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름 : 불량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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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9 - 등록 |
나이 많고 이젠 클래식에서 멀어진 내가 여기에 이런 이야기 쓰는 건 우습고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하진이의 정성어린 충고를 보니 나도 뭔가 말을 하고 싶어진다. 하진이는 좋은 선배로군. 그리고 이런 글이 많이 올라올 수 있는 게시판이 따로 있어야겠지.
하진이가 필요한 이야기는 아주 많이 해줬으니 내가 할 이야기는 적은데, 하진이의 글은 대개 경험과 경력이 많지 않은 사람을 위한 것이니 난 좀 더 경험이 있는 이들을 위해...
선곡에 있어 딜레마가 몇 가지 있다. 하진이는 안전한 곡을 골라 잘 연주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나와 내 동기들, 몇몇 선배와 후배들은 이때껏 안 했던 것을 해서 기타의 한계를 넓혀보고자 했다. 지금도 그런 시도를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는 있다.
내가 연주했던 곡들은, 2학년 봄연주회 <전람회의 그림> 사중주, 2학년 정기연주회 브람스 <주제와 변주> 듀오, 3학년 봄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3학년 가을 비발디 <여름> 트리오, 3학년 정기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었다. 물론 오비연주회에서 <카르멘 조곡> 사중주와 이번에 피아졸라 <탱고 조곡>도 했었다. 그리고 비발디 사계는 퀴즈아카데미와 연합회 연주회에서 비공식적으로 거의 연주했었다.
이 가운데 연습하면서 가장 쾌감을 느꼈던 곡은 <봄의 제전>이었다. 멤버들 모두 이 곡을 하기 위해 모였던 것이고 무엇보다 곡이 좋았다. 사실 연습을 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같이 맞추면서 가슴이 뛰고 황홀해지는 체험은 다른 곡에서 느낄 수 없었다. 이것은 아주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 곡을 연주할 땐 특별히 황병기 선생님께서 오셔서 들으셨다. 물론 막내아들의 연주에 비판이야 안 하셨지만...
어느 정도 기량이 되고 욕심이 있다면, 그리고 음악에 대한 진지한 열정이 있다면 과감한 시도를 하는 것도 좋다. 아마추어니까. 음대생이나 프로라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그야말로 좋아서, 열정 하나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연주할 수 있는 시기는 극히 짧다. 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 경우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라흐마니노프의 경우, 정말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팀을 만들어 했다. 결과는 역시 만족스럽지 않았다. 솔직히 그때 같이 한 멤버들은 그 곡을 소화할 기량이 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런 멤버들을 이끌어갈 자격이 없었다.
여러 가지 어려운 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멤버들이 모두 수준급의 기량과 함께 음악에 대해 늘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부해온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편곡, 해석, 호흡 여러 면에서 고민을 나누어 맡을 수 있었고 난 '연주'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실 좋은 멤버들과 팀을 만들어서 때로는 '여러 팀을 각기 만들어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을 다 끌어가 버렸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마치 현대나 삼성 구단처럼. 하지만 음악적 성취와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화현회는 음악 동아리니까. 연주회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다. 그 중에 친목 도모라든지 초심자의 자아실현도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음악' 자체도 중요한 것이다.
실력이 되고 열정이 있는 이라면 욕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남보다 기타를 잘 치는 이가 떠맡아야 할 책무이기도 하다. 한 학번에 한두 명씩 있을 수 있는 '기타리스트'가 '안이한' 레파토리만 연주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그런 레파토리를 듣기 좋게 연주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적다. 오히려 그런 것은 대학 와서 기타를 배우고 열심히 노력하여 기량이 는, 설사 늘지 않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는 이에게 맡기라고 하고 싶다. 실제로 그들이 그런 곡은 훨씬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선곡을 할 때는 아무래도 한계에 부딪힌다. 하진이가 말한 여러 가지 조건들... 기타의 한계를 깨려면 뛰어난 기량이 필요하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다양한 연주를 접하다 보면 몇 가지 조건을 극복할 만한 길이 발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사계'는 확실히 어려운 레파토리다. 헌데 접근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야마시타와 래리 코리엘 듀오는 두 기타의 독자적인 테크닉에 맡기는 수법을 썼다. 이는 기량이 둘 다 뛰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암스텔담 트리오는 편곡의 묘미를 살려 아주 풍부하고 부드럽게 처리했다. 로메로스나 야마시타라면 무작정 빨리 치고 볼 부분을 아르페지오로 처리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일단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연주회장에서 영감을 얻어 길이 열리는 경우도 있다. '아... 저런 식으로 하면 되겠구나' 또는 '저런 느낌의 연주가 가능하구나'하는 식으로. 이것은 아주 유용하다. 로스로메로스의 연주를 보며 '이 곡을 저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편곡하겠지'라는 감을 얻을 수 있었다. 로스로메로스는 철저하게 기타적인 편곡을 하는 이들이므로 이 감각은 많은 도움이 됐다.
현악 중주곡을 편곡할 때 흔히 화음을 단음으로 각기 동시에 쳐서 구현하게 된다. 비발디 기타 협주곡들을 연주할 때 그렇게 된다. 하지만 기타의 장점은 부드럽게 울리는 화음에 있다. 같은 화음을 쳐도 피아노나 다른 현악기로 연주하는 느낌과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기타에 자연스럽고 리듬을 탈 수 있는 코드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과감한 전위(맞나?)도 시도해야 한다.
또 다른 길로, 단음으로 화음을 구현하되 각각을 독자적인 선율로 파악하는 방법이 있다. 예완이가 이런 편곡을 잘하던 것 같은데... 이는 멤버들이 수준급의 음색과 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현악사중주를 보면 각 파트는 강렬한 비브라토와 보잉을 구사하며 화음을 낸다. 기타도 마찬가지로 선이 굵은 비브라토와 과감한 탄현으로 서너 명이 동시에 소리를 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합주할 때 흔히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합주에서 이것이 아름답게 들리기는 어렵다. 멤버들의 기량이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가 자기 파트의 음표를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처럼 연주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동시에 소리낼 수만 있다면 합주에서 음량 조절이니 음색이니 표현이니 하는 것은 다 필요없다. 나는 리허설 가도 합주에 대해선 거의 말하지 않는데, '좋은 소리 내고 잘 맞추기'만 하면 문제는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알아도 안되는 것을 구구절절 말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여담이지만, 기타를 모르는 일반 청중은 일단 기타에서 나는 잡음, 삑사리 등을 몹시 거슬려 한다. 그들을 위한 연주를 하려면 우선 이런 것을 줄이고 깨끗하게 해야 할 것이다.
기타 편곡에 있어 위의 두 가지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어려운 문제이다. 대체로 리듬감이 강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전자-기타의 코드를 활용하는-가 좋고, 조형미와 부드러움이 강조되는 곡에서는 후자-단선율을 조합하여 화음을 만드는-가 좋다. 만약 오케스트레이션을 기타로 표현하고자 하면 전자를 써야 할 것이다. 후자를 택한다면 비브라토로 음을 풍성하게 만드는 연습을 해야 한다. 특히 아직 터치가 좋지 않은 화현회 학부생은 비브라토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터치가 안 좋아도 비브라토를 적절하게 걸어준다면 소리가 아름답게 들릴 수 있다. 화음에서 비브라토 거는 것이 금물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약간 걸어줄 필요가 있다.
단선율을 쓸 때 비브라토를 걸어 별개의 멜로디처럼 연주하는 경우의 장점은, 동시에 나오지 않아도 들어줄 만하다는 것이다. 보통들 연주하는 것처럼 맥없는 소리로 화음의 구성음을 건드려 낼 경우, 동시에 칼같이 나오지 않으면 아주 듣기 싫다. 틀렸다는 것이 명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각자가 선율을 연주하는 것처럼 하면 조금 어긋나도 나름대로 괜찮은 소리가 나올 수 있다.
또, 편곡하다 보면 하진이가 지적한 대로 각 성부의 음역이 고민거리가 된다. 좁은 기타의 음역으로 피아노나 현악중주를 커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떤 때는 비올라로 연주되는 선율이 멜로디보다 높아질 수 있고 어떤 때는 멜로디가 너무 높아질 수도 있다.
때로는 과감하게 바꿀 필요도 있다. 보통 음악을 들으면 베이스에서 멜로디를 연주하고 고음 악기가 화음을 연주할 때도 있다. 기타도 마찬가지다. 특히 음색이 풍부하지 않은 아마추어가 연주할 땐 오히려 멜로디의 음역을 변화시키면서 연주하는 편이 더 좋을 수 있다.
예전에 콩쿨팀을 위해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를 편곡해 준 적이 있다. 피아노 악보를 보고 했는데, 악보에 얽매이기보다는 귀로 들리는 그 느낌에 충실하려 했다. 그래서 멜로디를 일부러 한 옥타브 올리거나 내리면서 서너 번 반복되는 멜로디를 각기 다른 음역에서 연주하게 했다. 가능하면 그 멜로디를 많은 멤버들이 나누어 연주할 수 있게 했다.
음색이 좋지 않은 아마추어연주팀에서 한 명이 반복되는 멜로디를 계속 연주하는 것을 듣는 일은 솔직히 고역이다. 돌아가며 연주하여 나름대로의 변화를 주면 훨씬 낫다. 원곡이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해도 바이올린 파트를 한 명이 연주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기타는 바이올린이 아니다. 멜로디를 적절히 나누어서 돌아가며 연주하자.
화성을 이루는 성부는 판단을 잘 해야 한다. 만약 기타로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 연주하고자 하면 그 코드는 한 사람이 연주해야 한다. 물론 코드 파악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아무래도 화성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보통 통기타 코드 정도 아는 이들은 C면 C, G면 G의 자기가 알고 있는 폼만 쓴다. 그러나 코드 구성의 기본 원칙은, 코드의 흐름이 하나의 멜로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성음이 비약하지 않고 자연스럽도록 코드폼을 연구해야 한다.
만약 두 세 파트가 함께 화음을 연주한다면 멜로디가 저음일 때 높은 곳에서, 멜로디가 고음일 때 중음역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배치를 잘 해야 한다. 이 때도 비약은 금물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단음이 아닌 두 음 정도 연주하도록 하는 게 좋다. 단음으로 하면 강약 조절이 어려워서 너무 튀거나 너무 맥이 없을 수 있다. 두 개의 음을 쓰면 음이 겹치는 것도 막을 수 있고 기타로 화음을 칠 때만 알 수 있는 매력적인 울림이 나온다. 단음을 치는 것과 두 음을 치는 것은 천지차이다.
편곡에 있어 또 다른 묘미는, 특수주법 사용이다. 나와 우리 학번 황원묵이 때문에 한때 화현회 연주회에 특수주법이 난무하여 선배들이 '아포얀도 소리 좀 듣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오케스트라 곡을 많이 선택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었다. 원묵이가 편곡한 '페르귄트 조곡'은 당시 대단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이후 다른 학교로 악보가 퍼진 것으로 알고 있다.
원묵이 말로는 이 편곡의 구상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천장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어쨌든, 내가 감탄한 부분은, 오케스트라의 악상을 '디지털라이즈'했다는 점이었다. '오제의 탄식'에서는 현악 중주만이 나오며 슬픔의 단계를 강약으로 표현한다. 이 경계가 뚜렷한데, 원묵은 기타의 볼륨이 빈약한 점을 파악하고 이를 주법의 변화로 구분하였다. 아주 약한 부분은 하모닉스로, 다음은 정상적인 탄현으로, 그 다음은 부분적인 라스게아도로, 최고의 절정은 전체적인 라스게아도로.
물론 이것은 야마시타의 편곡 방법이다. 하지만 페르귄트에서는 아주 적절했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지나치면 무리했다는 느낌을 주고 심하면 '쇼'라는 느낌도 줄 수 있다. 하지만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니 잘 활용해 보라고 하고 싶다.
흔히 악상을 강약으로 표현하거나 탄현위치로 표현하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추어 수준에서 위험하다.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팀을 보면 대개 약하게 들리다가(보통) 아예 안 들리다가(피아니시모) 잡아 뜯는다(포르티시모). 마치 무언극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대가의 연주를 직접 가서 보면 그런 극단적인 음량 변화는 하지 않는다. 대개 일정한 음량을 유지하며 필요한 경우 '부드럽게' 연주할 뿐이다. 심지어 레코딩에서는 느리게 연주하는 곡을 공연에서는 상당히 급하게 연주하기도 한다.
이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묘한 음의 차이가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고 금방 지루해할 수 있는 공연장에서는 좀 더 강하고 뚜렷한 연주가 필요하다. 연주회장에 많이 가라고 후배한테 항상 강조하는 것은, 이런 기술을 보라는 의미도 있다.
아마추어들은 대개 음반을 듣고 그 표현을 배운다. 하지만 음반은 고성능 마이크로 잡고 다시 손질을 한 것이므로 그것을 따라 표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물론 집에서 혹은 잘 울리는 서클룸 복도에서는 비슷한 느낌이 난다. 그러나 넓은 공연장에서는 턱도 없는 일이다. 청중이 보기에 자아도취일 뿐이다.
그러니 제발 잘 울리고 터치가 분명한, 기분좋은 명쾌한 음으로 일정한 템포를 유지하며 일정한 음량으로 연주해 주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이 부분은 나도 찔린다) 이것만 잘하면 악상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듣기 좋다. 그런데 대개는 이건 안 하면서 쓸데없는 악상 표현을 하려고 한다.
글이 참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리듬 훈련을 많이 해라. 이것은 내가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이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리듬이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리듬감이 있느냐 없느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들은 몇 개의 음만 연주해도 금방 티가 난다. 내 연주를 녹음해 들어도 프로들 같은 느낌이 안 나는 것은 바로 리듬감의 차이에 있다. 쉴새없이 리듬을 타는 연습을 해라. 쉼표에서도 연주를 해라. 스케일 연습할 때는 4박씩 악센트를 주며 연습해라. 4분음표, 2분음표를 연주할 때에도 탄력있게 연주해라. 한 음 치고 맥 놓고 기다리지 말고 비브라토를 걸어주며 리듬을 타라. 기타를 두들겨 가며 리듬을 맞추라.(이건 재즈기타 제자들은 해봤을 것이다)
중주든 독주든 곡을 익히기 위해 이런 연습도 필요하다. 느린 곡은 경쾌하게, 빠른 곡은 느리게 연주해 보는 것이다. 템포만 바꾸는 게 아니라 느낌을 완전히 바꾸어 보라. 난 항상 '모든 곡을 발라드로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느리게 연습하는 습관을 들이는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각 음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린 게 능사는 아니다. 어떤 곡은 일정 템포 이상이어야 제 맛을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테크닉 연습과 속도 향상을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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