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시물제목 : 김하진선배의 『팀장을 위한 도움글 2탄』 |
1,562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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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름 : 불량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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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6 - 등록 |
아... 후배들 보기에 나름대로 까마득한 선배가 되고 나니 게시판에 와도 이런 딱딱한 글밖에 쓸 수가 없네요.
그래도 지금 졸업하는 학번 정도까지는 같이 뒹굴고 지냈던 것 같은데...
수미 선배님의 한 마디에 새로운 게시판이 하나 생겼던데... 뭐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만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어차피 역사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계속 반복되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가 하는 모든 짓들이...
몇 년 후에 또 자신의 경험으로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쓰고 있을 사람에게 어찌 또 그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겠어요?
또 어느 선배인가가 이런 글을 이미 책에다 넣어 동아리방에다 떡 갔다놨으면 제가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
시간을 두고 주제별의 글들을 모아 학부 때의 짧은 화현회 인생을 위한 가이드북을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이고
과거의 노하우들이 사라져 간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들도 있고 이 단체가 계속 발전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각설하고, 이번에 하려는 얘기는,
- Learn from the past. Learn from the best.
팀장을 할 사람이라면, 아마 나름대로의 곡에 대한 해석과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이러한 추상적인 것을 1mm 두께의 나무판과 65cm짜리 줄 여섯개로써 구현하는 것은 그 사람이 훌륭한
음악적 감수성이나 표현력을 가지고 있느냐와는 또다른 문제죠. 무엇보다도 그 악기에 익숙해야 하고 온전한 방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악기에 대한 우리의 짧은 경험과 미숙함으로는 도저히 한창 감수성 풍부하고 머릿속 복잡한 대학생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음악으로 연결시키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기타실력이 부족하다는 얘기인데, 연주력을 늘리는 것으로 말하자면 시끄러운 동아리방에서 땡땡거리고 있을
시간에, 밥도 잘 안 사 주는 사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시간에 - 게다가 오디션 지나고 나면 레슨을 거의 받지 않죠? -
아르바이트 한 번 더 하고 그 돈으로 좋은 레슨 선생을 찾아서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며 실제로 그렇게 해서
단기간에 높은 기량을 갖춰서 짠~하고 나타난 경우가 여럿 있었습니다.
뭐, 그것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더 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행복할까요? 아직 우리나라에 클래식기타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을 당시에 프로보다 앞서
새 길을 열어 나갔다는 화현회 - 이렇게 말하니 정말 대단하게 생각되네요. ^^ 역사는 역사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니... -
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나요? 아니면, 친구들 많이 있는 동아리방에 있지 뭐 그렇게까지 목숨 걸고
하냐는 생각이 드나요? 동아리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한 몫 하겠지만 그보다도 그런 독주를 위한 레슨에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어차피 다 배울 수 없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자세와 음색, 악기를 다루는 정석적인 방법부터
차근차근 가르치기에 개인의 연주 기량은 월등해질 수 있어도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곡에 집어넣고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은 한동안 뒤로 접어놔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중주라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않죠.
한 명부터 네 명까지 사람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요구되는 것은 천지 차이랍니다. 물론 제대로 된 개인 기량이 항상
밑바탕이 되어야 하고 궁극적인 연주에 한계의 선을 긋게 되지만,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외의 것들의 비중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전문적인 레슨의 무용론이 아니라는 것은 아시겠죠?
또한,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화현회 밖에서 레슨을 받기가 간단한 것은 아니죠. 강사를 모셔와서 단체레슨을
받는 것에 대한 의견이 나온 적도 있고 아주 옛날에 그랬던 시기도 있습니다만, 지금의 사부-제자 시스템이 갖는 매력을
잃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이었죠. 그보다도, 가끔 workshop... masterclass?? 뭐라고 불러야 하죠?
공개레슨 같은 거. 몇 명이 미리 곡을 연습해서 초빙된 분 앞에서 공개적으로 레슨받는 행사는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레슨부장, 알았나요?)
.............
그렇다면, 기타로 무언가를 표현해 보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또 팀장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생은 누구일까요?
바로 음반이죠.
'xxx 무작정 따라하기' 같은 제목의 책들이 있죠?
음악적 표현 무작정 따라하기는 어떨까요? 보증된 연주가들이 남긴 음반에는 수백년에 걸쳐서 사람들이 고민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답들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과장된 말일지 모르지만 한 악기에 대해서
뛰어난 연주자들의 음반 두세 개만 들어봐도 그 안에는 그 악기로서 구현이 가능한 거의 모든 표현들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릿 속에 떠도는 관념과 감상들을 어떻게 악기로 옮길 것인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대신에 선조(?)들의
연주를 귀기울여 들어보면서 '저 부분은 어떤 터치로 처리했기에 저런 소리가 날까?', '저런 부분은 저런 정도로 강약의 대비를 주는군',
'스타카토는 저렇게 해야겠군', '자연스럽게 몰아가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저 정도의 accel. 과 cres.을 해야 하는군'
'어느 정도로 비브라토를 걸면 저런 영롱한 소리를 얻을 수 있을까', '저 음은 얼만큼 빨리 나오고 이 음은 얼만큼 늦게 나오게 연주했을까'
등의 상상을 해보는 것이 훨씬 더 쉽고 빠른 길일 것입니다.
당연히 기타라는 악기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악기나 피아노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그것들을 어떻게 기타에 적용시킬지를 고민해 보는 것처럼 즐거운 것도 없죠.
당연한 소리 하지 마시라구요? 누구나 음악 즐겨 들으면서 생각 많이 하고 있다고요? 원래 클래식광이라구요?
팀을 꾸리거나 남 앞에 서야 한다는 목적 없이 음악을 들으면서도 손의 자세와 움직임, 손 끝의 터치, 연주자의 표현 의도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버릇이 되는 것도 상당히 괴로운 일인데 모든 음반이나 연주회에서 원래 곡을 감상하려 하지 않는다는 거죠.
원래의 작곡에 연주자가 덧붙이고 변형시킨 무언가만을 쫓아서 듣게 되고 연주회가 끝난 후에도 가장 인상적인
'표현' 하나만 기억에 남게 됩니다. 어떤 곡에서의 템포 루바토가 참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그 곡의 마지막에서 다같이
rit.한 것이 괜찮더군.... 뭐 이렇게요.
백혜선의 연주회에 간 적이 있는데 앵콜곡으로 연주한 트로이메라이에서 연주회장의 분위기와 즉흥적인 감상에 의해
특유의 몰입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거의 반 박자쯤 늦춰서 가볍게 울린 제일 높은 음 하나.... 그 부분만이 머릿속에
남아서 지워지지를 않더라구요.
음반을 들어도 들리는 것으로부터 악보에 나와 있을 것을 쏙 빼고 듣는 습관이 생기기도 합니다.
곡을 감상한다기보다는 연주를 감상한다고 해야겠죠.
독주나 현악사중주 같은 실내악 곡에만 관심이 가고 웅장하지만 왠지 틀에 딱 맞춰져 있고 여러사람의 소리가 뭉쳐서
들리는 관현악 곡 등의 매력을 못 느끼게 될 수도 있고요.
저는 그 때문에 오히려 클래식 음악 자체에서 흥미를 좀 잃어 요즈음에는 그냥 편안히 재즈를 들으면서 극복하려고 하고 있죠.
뭐, 이런 말 쓰니까 제가 뭐 대단히 음악에 대해 매니아적인 사람임을 자처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거 아시죠?
그만큼 해야 저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그보다도 빠져들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하는 말씀이외다.
저도 그랬지만, 적어도 팀장을 하는 동안에는 완전히 푹 빠져야 합니다.
단, 신념을 가지고 추구하되 그 신념이 '건전한' 것이어야 해요. 너무 생각을 깊이 한 나머지 주화입마의 길로
들어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결과물은 '소리'이며 모든 것은 그 '소리'로써 판단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전에도 얘기했지만 연주에 몰입하면서도 스스로의 연주, 다른 팀원들의 연주, 팀 전체의 연주를 '잘' 들을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위와 같이 음반들을 집중력 있게 듣거나 연주회장을 많이 찾는 것이 좋은 방법들이고요.
여하튼............
음반으로부터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면 가장 좋은 것은 피아노 음반과 현악사중주라고 생각합니다.
기타 독주 음반은 기본이겠지만... 오히려 많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악기 특성상 과도한 표현을
하기가 쉽지 않고 보통 절제되고 깔끔하고 테크닉적으로 완벽한 연주 혹은 시종일관 음색이 무지 아름다운 연주가
좋은 연주로 인정받기 때문에...
피아노는 기타와 비슷하게도 한 순간의 터치가 한 음을 거의 결정해 버리기 때문에 터치의 순간순간에
최적의 타이밍과 최적의 음량을 정확히 찾음으로써 최대로 표현을 집어넣고 현악기에 못지 않은 풍부함을 전달하고자
하기에 당연히 기타로서는 배울 점이 많이 있겠죠?
현악사중주는 비슷한 류의 악기로 하는 중주라는 점에서 가장 기타 팀에 가깝기에
파트 간의 밸런스, 멜로디 파트가 어떻게 치고 나올 것인가, 받쳐주는 파트는 어떻게 과도하지 않으면서 제 소리를
낼 것인가, 어떻게 여러 사람이 똑같은 표현을 할 것인가, 일치되는 느낌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줄 것입니다. 찰현악기의 특성상 연주자의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가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는 것도 큰 매력이고요.
피아노나 기타는 그에 비하면 적절한 배치와 분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현악사중주 중에는 참 머리 아프게 하는 곡들이 많은데 아직 거의 들어보지 않은 분에게 출발점으로써
제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가장 머리 아픈 건가요?),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등등...
인기를 얻고 있는 기타중주단들도 여럿 있는데 분명 배울 점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나 현악사중주처럼
표현의 강도가 진하게 다가오지 않으니 거기에서 어떤 표현을 잡아내려면 좀 더 예민한 귀를 필요로 하겠죠.
쓰다보니 참 길게도 썼는데 한 마디로 하자면, 음반 많이 들어보시고 생각 많이 해 보시라는 겁니다.
팀원들 앉혀놓고 '한 번 쳐 봐' 한 다음에 한참동안 고민하고 있지 마시구요...
전에 얘기했죠?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그림으로 수렴해 가야 한다고요.
원하는 그림이 안 그려져 있다면 어떻게 수렴을 할 수 있겠어요?
..............
어느 유명한 지휘자가 그랬다죠? '음악은 정확한 것이다'
조금 바꿔 '음악은 정확히 표현된 것이다'라고 하면 어떨까요? 악보를 보고 또박또박 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치는 사람은 또박또박 친다고 치는데 듣는 사람은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어요.
사람 귀는 원래 좀 이상해서 정확한 음정은 이상하게 들리고 약간 조정을 해 줘야 하죠. 피아노 조율하는 것을 보면
딱 알 수 있는데... 그리고, 리듬에 있어서도 정확한 박자로 치는 것이 리듬감을 가장 잘 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음량, 밸런스, 박자, 리듬, 이 모든 것에 결코 단순하지 않은 몇 개의 최적의 해가 있을 것이고 - 너무 결정론적인가요? -
이들 중 하나에 가장 가깝게 - 가장 정확하게 - 다가선 것이 가장 훌륭한 연주가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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