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시물제목 : 김하진선배의 『봄 연주회 팀장에게 고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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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름 : 불량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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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9 - 등록 |
오늘 룸에 갔더니 오디션 리허설을 하고 있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옛날에 오디션 리허설 보면서 팀원들을 고르던
기억이 났어요.
1학년들에게는 처음으로 선배들과 같은 순서에 연주회 무대에 올라보는 기회이기도 하고 또 처음으로
팀이란 것을 - 콩쿨을 제외하고 - 해 볼 기회이기도 하여 팀을 했네 못 했네 하면서 가슴앓이도 많고 말도
많아 왔던 2학년때 맞는 봄연주회. 가을과는 달리 다같이 합주를 하기도 하고 또 추운 겨울의 연습을 지나
맞이하는 연주회이기에 가을과는 사뭇 다른 매력이 있는 듯합니다.
새로 학교에 들어올 신입생들에게 화현회의 모습을 보여 줄 기회이기도 하고요.
.............
화현회 연주회를 앉아서 지켜보기만 한 것도 어언 3년. 리허설 때 열마디 해 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다고 연습할 때 구경가서 잔소리할 여유는 없기에 차라리 사전에 그동안의 경험에서 나온
몇 가지 가벼운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저도 옛날에 팀을 처음 꾸리면서 편곡 및 연습에서의 여러가지 노하우와
중주가 추구할 바에 대해 참 물어볼 데가 궁했고 많은 경험을 가진 선배들의 조언을 충분히 듣지 못한 것이
아쉬웠기에 지금의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간단히 몇 가지 적고자 합니다.
다소 길 것이고 다분히 개인적인 - 제 스타일(?) 또는 취향에 입각한 - 생각들이 있을 것이니
관심없는 분은 얼른 넘겨버리세요.
1. 곡 선정
- 평범한 곡에서 비범한 무엇인가를......
전에는 '곡 선정이 반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는 그보다 더 최종결과물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하고 미리 모든 것을 마음속에 그려보아야 합니다.
잠깐 화현회 밖으로 나가서 화현회 연주회를 들여다 보면 지금 우리가 다양한 장르와 시대의
곡을 골라서 직접 한 가지 악기를 위하여 편곡하고 두달이라는 짧은 기간을 거쳐 무대에 올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음악애호가의 눈에는 무리스럽고 앞뒤 생각하지 않는
장난으로 보이거나 원 작품에 대한 모욕 - 심한 경우에... 하지만 조금만 못 해도 이런 평을 받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 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순수히 기타 중주를 위한 레퍼토리는 정말 적지요. 특히 저와 여러분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무언가 클래식한 멋이 물씬 풍기고 감동을 안겨줄 만한 곡들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곡들 중 우리의 공통의 음악표현 수단인 기타에
어울릴 수 있는 곡들을 힘들게 찾고 편곡하여 무엇인가를 재창조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러한 편곡연주 자체가 원래의 연주에 대해서 2차적인 것이거나 무의미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원곡의 새로운 이해와 해석을 모색할 수 있고 듣는 이에게 신선한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피아노의 경우에도 피아노를 위한 곡들이 넘쳐나는 데에도 불구하고 각종 오케스트라
곡이나 다른 악기를 위한 곡을 매우 많이 편곡하여 연주하고 그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멋을 찾고자 하죠.
문제는 그렇게 해서 다다른 최종의 연주가 듣기에 아름다운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편곡실력이나 연습, 기량 등보다도 '기타를 통해 아름다울 수 있는 곡'을
고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참 쓰고 보니 당연한 얘기만 한 것 같지만,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서
상당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어려운 연주를 한 경우가 화현회나 다른 단체의 연주에서
많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제가 예전에 첫 팀(4중주)을 만들기에 앞서 곡을 고를 때 세웠던 기준들을 말하자면...
++ 매력적인 화성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 - 기타에서 울리는 화음은 현악기의 꽉 차고 넘치는 듯한
너무 많이 섞여버린 화음과도 다르고 피아노의 완전히 분리된 차가운 화음과도 다른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지요.
++ 각 파트들이 모두 '동적'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낼 것. - 팀원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연주자 중에 하나라도
심심하다면 듣는 사람도 결코 몰입하거나 즐거울 수 없습니다. 이 기준이 많은 왈츠류의 곡과 전형적인
멜로디 + 반주 스타일의 수많은 곡들을 제외시켰죠. 각 파트가 동등한 비중을 갖는 것으로 치자면
바하의 곡이 최고지만 저는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곡을 하고 싶었기에 고전파를 고르지는 않았죠.
++ 주 선율 혹은 멜로디는 긴 음이 나오지 않고 계속 변화해 가면서 이어질 것.
- 기타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죠? ^^
++ 내가 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스케일이나 아르페지오가 있지 않을 것.
- 원곡의 속도보다 한참 느리게 연주하는 것만큼 연주자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괴로운 것은 없죠.
역시 눈물을 머금고 많은 곡을 포기하게 만들었죠.
++ 마지막으로, 내 마음에 들 것. 충분히 연주와 표현에 몰입할 수 있도록.
- 팀원들은 처음에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죠. 아, 곡을 고를 때의 나의 고충을 알았다면 금방
이해해 주었을 텐데... 하지만, 뭐 그런 것은 제 관심 밖의 일이었죠. '무조건 시키면 해' 하는 식의
강압적인 팀장이었으니까요. 음하하. 연주회가 끝나고 밝힌 거지만 그 때 같이 한 1학년 두 명의
합주 파트를 팀에서의 파트와 같게 해 달라고 지휘자에게 부탁했죠. 기본기 연습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대신 그 때부터 자신의 베이스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배xx의 한탄을 졸업할 때까지 들어야 했죠. ^^
나중에는 그들도 곡을 마음에 들어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곡 자체의 매력을 떠나서
그 곡은 네 사람이 뭉쳐서 일치된 한 가지 표현을 하고 곡을 만들어가기에 매우 좋았으니까요.
이 정도의 기준을 고려하고 나니 정말 할 곡이 없더이다. 현악사중주가 비교적 많은 조건을 만족하지만
일단은 무척 난해하고 그 중에서 처음 들어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곡을 찾기가 참 어려웠어요.
다행히 그로부터 2년 전 정기합주에 했던 드보르작의 슬라브무곡 중 하나(10번 혹은 Op. 72의 2번)가
모든 조건을 만족하여 그 곡을 포함하여 슬라브무곡 중 두 곡을 고르게 되었죠.
사람들 귀에 많이 익숙한 곡이기도 한데 느리고 정적인 오케스트라 버전보다는 한층 빠르고 동적인 피아노 2중주
버전을 참고하여 편곡하고 연주도 그에 맞추었죠. 표현도 최대한 진하고 격하게(?) 넣었고...
예를 너무 길게 얘기했군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선곡부터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마음에 드는' 곡부터 고르는
것으로 시작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마음속에 찜을 해 버리면 그 곡의 무리스러운 점은
그냥 덮어두게 되거든요. 기타로 연주가 가능하고 잘 어울릴지 여부를 아주아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보다 나아간다면 연주회 전체의 분위기와도 어울릴지를 고려해야 할텐데 여기까지는
현재 화현회로서는 아직은 요원한 얘기이고요.
예전에 어떤 후배(기억이 안 남)에게 한 곡을 추천했는데 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다름아닌 '너무 유명하다'는
것이더군요. 사람들에게 참신한 곡을 보여주겠다는 생각도 좋지만 앞서 얘기한 대로
중요한 것은 최종결과물입니다. 귀에 익은 곡이 기타로 편곡되고 매우 정확하고 풍부하게 표현되어
새로운 매력을 갖게 된다면 충분히 감동적일 것입니다. 기타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요.
비범한 곡을 골라서 평범하게 연주해 버리는 것보다는 평범한 곡에서 비범한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것이 훨씬 더 나으리라는 얘깁니다.
2. 편곡.
화현회에 들어오기 전에 기타를 익힌 사람도 드물지만 편곡을 해 본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지휘도 마찬가지고. '누구나 처음이다'라고들 하죠?)
제대로 음악이론을 배우지 않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원 악보에 있는 음표들을 모두 모아
적절히 파트별로 나누고 가끔 생략을 하고 음높이를 바꾸고 화음을 조절하고 조를 바꾸고 음표를 어느 정도로
끊을지를 결정하고 각종 특수효과를 집어넣고 나중에 들어보면서 다시 수정하는 것
또는 인터넷을 뒤져서 편곡되어 있는 악보를 구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고려할 것은 악보 한 페이지 당 밤을 새도 모자를 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선곡의 과정에서 충분히 신중했다면 파트가 잘 나누어지지 않거나 연주가 불가능한 것은 없겠지만,
파트별로 연주자의 특성까지 고려하여 중요한 음들이 살아나도록 음표들을 배정해야 합니다.
조를 정함에 있어서는 주선율이 기타의 고음 중 적절한 음높이에서 주로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음역을 넓힐 욕심에 너무 고음 쪽으로 first part를 몰아넣어 버리면 결코 풍부한 연주를 할 수 없으며
3중주나 4중주에서 베이스기타를 쓰는 것도 요즈음에는 보통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기타 자체가 이미 매우 낮은 음역의 악기이기 때문에 특별히 넓은 음역을 요구하는 곡의 경우가
아니라면 되도록 프라임 기타만으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잘 어울립니다. 베이스기타는 항상
차선책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라는 말입니다. 프라임 기타 네 대로 하는 대신 조를 5도 올려서
멜로디를 저기 위로 보내 버리고 베이스 음은 멜로디와 한 옥타브 더 떨어지도록 하는 식으로
음역을 넓히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한 파트가 넓은 음역을
왔다갔다할 때도 경우에 따라서는 무리하게 따라가는 대신 중간에 적절히 한 옥타브 조절하여 기타에 맞게
절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와 음역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두번째로 고려할 것은 어떻게 화음을 만드느냐 하는 것인데...
최근의 연주회들을 보면, 저음 쪽에 반주부를 맡은 두 파트 이상이 몰리고 first가 저 위에서 날카로운
고음을 홀로 연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타의 특성상 저음에서의 화음은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고
비교적 지저분하고 불명확하게 되기 쉽습니다. 또한, 화성학적으로도 - 저도 직접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
고음부에서 간격이 좁은 화음을 이루고 저음부는 그로부터 넓은 간격으로 있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합니다. 즉, 음표들의 음정이 로그함수처럼 낮은 영역에서는 넓은 간격으로 높은 영역에서는 좁은 간격으로
있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솔로 연주곡을 많이 접해 본 사람들은 보통 나오는 화음의 모습에서
그러한 간격의 구성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파트보다 거의 한 옥타브 낮은 저음을 구사하기 위해서
베이스 기타를 넣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가령 third part가 5,6 번 줄을 연주하고 있다면
베이스와의 음의 간격은 넓을지라도 기타음의 특성상 명확하고 아름다운 화음이 되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중후한 저음부 + 잘 어울리는 중.고음부의 화성)으로 잘 편곡이 되지 않는 곡이라면
처음부터 선택을 신중히 고려해 봐야 할 것입니다.
세번째는 운지에 대한 것인데, 팀장으로서 편곡을 하고 있다면 그 때부터 미리 운지에 대한 것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연습할 때 그 운지를 강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습곡에 나오듯이 1번 손가락이냐 2번 손가락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줄에서 연주할 것이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가령, 한 파트가 연주하는 어느 정도 길이의 멜로디에서 중간에 줄을
바꿔서 음색의 변화를 절충할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표현을 위해 굳이 한 줄을 고집할 것인지
또는 의도적으로 더 낮은 줄의 높은 포지션에서 expressive하게 연주할 것인지, 낮은 포지션과 개방현을 섞어서
시원스러운 소리를 낼 것인지 등등.
어떠한 의도가 들어있지 않다면 기본적으로 화음은 솔로곡에 나오듯이 비슷한 포지션에서 나올 때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가령, first가 1번 줄의 높은 미를 연주할 때 second가 솔을 연주해야 한다면
1번 줄의 솔보다는 2번 줄 8프렛의 솔이 보통의 경우 더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Third에게는 도가 있다면 보통은 3번 줄 5포지션 정도가 적당하겠지만 주변 상황과 곡에서
그 음의 역할에 따라 2번, 3번, 4번 줄 중에서 잘 생각하고 실제로 비교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고요.
이것은 하나의 예일 뿐이고, 편곡 당시에 나중에 어떻게 연주할 것인지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연습.
팀장의 가장 주된 의무라고도 할 수 있죠. 경우에 따라 선곡은 같이 하기도 하고 편곡은
다른 사람이 해 오거나 있는 악보를 쓰기도 하지만, 연습만큼은 팀장이 직접 그것도
세 달 내내 진행해야 하죠.
같이 하는 팀연습과 개인연습을 시키는 것에 있어서는 정말 많은 방법과 나름의 노하우들이
있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효율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에 세 번, 네 시간씩, 세 달 동안...
아마추어로서는 정말로 많은 시간의 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악기를 다뤄본 지
불과 1~3년 밖에 안 되고 자기보다 고작 몇 해 더 접해 본 사람에게 레슨받은 시간은 다 합쳐봐야
24시간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식으로 사람들 앞에 10분간의 연주를 보이는 데에 있어서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아마추어라 하더라도 세상에 어느 악기를 불과 1년 만져보고
당당하게 무대에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보다 진지해지고 열심히 노력해야만 하는 이유도 필경은
여기에 있는 거죠.
재밌는 연습, 사람들과의 친분도 중요하지만 연습을 하면서 가장 즐겁고 기쁠 때는
자신들의 연주가 날이 다르게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팀원들과 함께 확인하는 순간들일 것입니다.
효율적인 연습시간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팀장의 책임이고 다른 것들이 부족한 것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연습을 제대로 못 시킨 것만은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팀장 혹은 지휘자는 제2의 사부죠.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자기 팀원들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팀을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맞춰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박자를 맞추고, 음량을 맞추고, 음색을 맞추고, 표현을 맞추고, 곡해석을 맞추는 것.
대략적으로 위의 순서대로 맞추어 나가는 것이 정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음색을 맞추는 것을 가장 앞에 두기도 합니다.
어떤 팀들은 앞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끝마치기도 하고 또 어떤 팀들은 앞의 단계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뒤의 단계에 집착하여 어딘가 허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하기도 합니다. 음색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곡해석을 통일시키겠습니까? 박자랑 음량이 하나도 안 맞는데 무슨 '느낌'을 맞추겠습니까?
잠깐, 딴 얘기로 빠지면... 저는 개인적으로 연주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쓰기 좋아하는
'느낌'이라는 단어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 하겠습니다. 느끼는 것은 듣는 사람이고, 물론 연주자도
느끼면서 연주를 하지만, '느낌으로 맞춘다'는 말은 도무지 구름잡는 소리 같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음악 또는 예술은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형이상학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미술작품에서는 구체적인 붓질 하나하나, 색깔 하나하나, 크고 작은 여백 등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져서 하나의 느낌을 우리에게 줍니다. 연주는 이미 만들어진 곡을 나름의 소리로써
옮겨내는 것이기에 창조적인 면이 덜할 수는 있으나 연주자의 '해석'의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이 부분은 더 크게, 여기는 아주 부드럽고 잘 이어지게, 여기는 저음부가 더 잘 들리게 하고 고음부는 점점 줄여서...
이 곳에서는 다같이 호흡을 늦추어서 약간 늘이고, 여기는 정확한 박자에 떨어지도록. 이 부분에서는
다른 파트들이 first를 받쳐주듯이 하고, 여기는 제각각의 멜로디가 분명히 들리도록...
이 두 마디는 속도와 음량의 변화를 통해 작은 언덕을 이루게 하고 그것이 네 번 반복되면서
전체적으로 크레센도되도록...
이러한 구체적인 음악적 표현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연주자의 머리속에 그려지는 굳이 말로 풀어쓸
필요가 없는 그 곡의 '느낌'을 듣는 이에게 전달하고 듣는 이는 또 나름대로 어떤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서로 지킴으로써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느낌으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가령, 팀장이 '여기는 이런 느낌으로 치자.' 혹은 '여기는 이런 느낌이 나게 치자.'라고 말하면
당장은 아무도 어떻게 해야 그러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고 제각기 생각대로
쳐 나갈 것입니다. 호흡을 많이 맞춰 본 경험이 있는 숙련된 연주자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팀장은 우선 자기 머릿속에서 음표 하나하나에 대한 아주 정확하고 구체적인 그림 - 어떤 세기로,
어떤 음질로(오른손의 포지션이나 터치 등), 어떤 타이밍에 나올 것이며 어떻게 다른 음들과 어울리게 할 것인가 등등 -
을 그린 후에 팀원들에게 알려주고 그대로 구현하기를 요구해야 합니다. 물론, 완벽한 경험많은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당연히 trial & error 를 반복해야겠죠? 하지만, 팀장이 많이 고민하고 상상해
볼수록 헛되이 쓰는 시간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의 문제가 더 있는데 바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지를 아는 능력입니다.
곧 '듣는' 능력입니다. 잘 들을 줄 알아야 지금의 연주가 머릿속에 그렸던 것과
어떻게 다른지와 문제의 핵심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시 어떻게 고쳐 연주할 것인지를
정확히 요구할 수 있겠죠? 차이를 인식하면 즉각적으로 팀원들에게 적절한 요구를 함으로써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원하는 그림으로 수렴해 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요구할 때는 정말로 '음표 하나하나'에 대해서
음량, 타이밍은 말할 것도 없고 오른손의 정확한 위치, 왼손의 운지, 비브라토를 거는 정도, 소음시키는 방법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가령, 거기 그 음 앞의 음보다 더 키우고 거기 조금 빨리 나오니까
주의하고, 여기 음량 변화 폭을 더 키우고 여기는 오른손을 조금 더 뒤로 해서 치고...
듣는 능력은 평소의 훈련과 선천적인 것이 많이 좌우하겠지만 제가 봐 온 경험으로는 지휘를 한 번 하면서
또는 팀을 한 번 하면서도 충분히 어느 수준까지는 계발됩니다.
계속 들으려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잘 듣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히 자신의 파트를 여유있게 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죠?
그리고, 연습할 때 룸 같은 곳이라면 네 명이 둥글게 둘러앉아서 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며
저의 경우에는 주로 그런 형태나 제가 세 명을 마주보는 형태로 연습했습니다.
아무래도 기타는 다른 악기에 비해 소리가 나아가는 방향성이 강해서 자기에게 앞판이 보이지 않는
기타의 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죠. 자기의 기타가 가장 가깝지만 앞판을 보고 있지 않기에
결국 네 대의 기타소리가 거의 비슷하게 들립니다.
무대에서 들리는 것과 너무 다르지 않겠냐 하실 분도 있겠지만 무대는 어차피 룸하고 너무 다르잖아요?
그것을 위해서 리허설이 있는 것이고.
밸런스를 맞춰가는 연습을 위해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 많이 썼다. 손 아프네요.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 중 가장 길게 써 본 글인 듯.
하려던 말을 까먹은 게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생각나면 또 쓸께요.
화현회 연주회에서의 중주 연주는 실력과 경험에 비해 보기 드물게 높은 '완성도'에 다다르는
집중력 있는 연주를 해 볼 기회랍니다. 세 달 동안 여러 명이서 곡 하나 붙들고 있는데 오죽하겠어요?
그 경험을 만끽하시길.
그럼, 모두들 화현회와 함께 행복한 겨울방학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 전에 기말고사들 잘 보시구요. 공부 안 하면 후회해요~~
기타도 좋지만 기타리스트 될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기타랑 결혼할 것도 아니죠? 그니까, 얼른얼른 추워지기 전에.....
에고에고, 헛소리가 나올려구 하네. 그럼,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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