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다 벼르다 이제야 꾸물꾸물 쓰는 본격 감정이입용 글입니다.
감정과잉에 의한 오그리토그리션에 빠뜨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원곡을 틀어놓고 악보도 펴놓고 매치시켜가며 읽어주세요 ㅎㅎ
Introduction - 메리의 성장
스털링 성
메리 스튜어트는 태어나자마자 추잡하고 음흉한 정치판에 던져지게 됩니다. 어머니는 저 멀리 프랑스에 있고, 유일한 보호자였던, 자상한 아버지임과 동시에 스코틀랜드의 훌륭한 왕이었던 제임스 5세가 이제 겨우 5개월 된 메리를 두고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사람들이라곤 어린 메리가 물려받을 왕위를 두고 다투는 귀족들 뿐입니다. 4개월 뒤, 아직 채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 아이의 대관식이 스털링 성에서 열립니다. 그 날은 제임스 5세가 숨을 거둔 날과 같이 어둡고 음산했다고 합니다. 사실 스코틀랜드의 대부분의 날씨가 그렇죠. 황량하고 어둡고 음산하고. 이렇게 왕위에 오른 메리를 노리는 이들은 국내 말고도 국외에도 널려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노리는 주변 대국의 왕들 및 귀족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어린 메리를 며느리로 맞이하기 위한 치열한 구혼 경쟁을 피해 메리는 스코틀랜드의 어느 수도원으로 비밀리에 옮겨져 그곳에서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네 명의 메리들과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자라납니다. 어쩌면 이 시기 이후로 메리가 일생동안 누릴 행복은 끝나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메리의 최측근이었던 대신은 메리가 15살이 되던 해에 메리를 프랑스 왕실로 시집보냅니다.
메리 스튜어트와 프랑소와 2세
이 혼담이 성사될 때까지 14년이 걸린 셈이니 주변에서 벌어진 끊임없는 방해공작이야 말할 것도 없죠. 화려한 프랑스 궁정에서 메리는 왕세자비로서,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왕비로서 최고의 지위와 부, 권력을 일찌감치 누립니다. 메리의 아름다움 역시 꽃피기 시작하여 훗날 등장할 마리 앙투아네트와 맞먹는 칭송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이 한순간에 덧없이 퇴색해버리고 맙니다. 남편이었던 프랑소와 2세는 평소에 매우 병약하여 사냥과 승마를 즐기는 메리와 자주 비교당하곤 했는데 결국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일찍 뜨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시어머니, 그러니까 대비인 카트린에게 밀려나 궁정의 2인자가 되고는 온갖 구박을(사실 이것도 자업자득인 것이 한창 득세하고 있던 시절 메리는 시어머니를 자주 '장사치'라며 모욕하곤 했습니다)견디지 못한 메리는 결국 프랑스를 떠나 이제는 기억마저 아득해진 스코틀랜드로 향합니다. 이때가 메리가 19세 되던 해였습니다.
Act I
i. Allegro un poco agitato - 다시 스코틀랜드로
메리 스튜어트의 초상. 그녀의 미모는 이미 프랑스에서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메리는 일평생 자신을 프랑스의 왕비이자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로 여겼습니다. 즉, 그녀 마음 한 켠 어디에도 스코틀랜드는 없었습니다. 자의식이 마구마구 성장할때 그녀가 겪은 것은 프랑스 특유의 향수어린 기사도, 화려한 왕궁, 사교계, 권력 등 중세의 끝자락을 반짝하고 불태우던 왕실문화였습니다. 그에 비해 스코틀랜드는 정말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였습니다. 오로지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는 귀족들과 '무지렁이 같은 백성' 들 뿐이었죠. 프랑스를 떠날때조차 메리는 프랑스식 예우를 받으며, 도착해서도 자신의 백성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 막상 도착했을때 그녀를 맞이한 것은 화려한 기병식도,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도, 미리 한달전부터 공문을 받고 준비하여 환영해주는 마을사람들도 아닌, 허름한 어촌과 그곳 주민의 멀뚱거리는 시선 뿐이었습니다. 저사람이 우리 여왕이다 라는 의식조차 전혀 없는, 애초에 국가의식과는 무관한 투박한 사람들이었죠. 스튜어트성 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짝이는 샹들리에, 류트를 켜며 노래하는가 하면 자신이 사모하는 귀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하는 세련되고 용맹한 기사는 온데간데 없이 그저 황량하고 칙칙한 돌벽과 차가운 난로 뿐이었습니다. 오랜 잉글랜드와의 전쟁과 내란으로 인해 국고는 텅텅 비어있었죠. 메리가 스코틀랜드에 가진 인상은 한 역사가가 말한 그대로 "황량하고 야만적인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메리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궁을 프랑스 궁정에서 가져온 물품들로 화려하게 꾸미고 살짝은 파격적이고 문란해보일수 있는 연극을 직접 공연하는 등, 자신이 겪은 삶을 재현하려 노력합니다. 이런 행동들은 청교도 및 신교 세력이 주된 스코틀랜드의 상황과 달리 어렸을때부터 구교가 지배적인 프랑스에서 성장한 메리의 종교관과도 맞물려 큰 갈등의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ii. Assai agitato - 마찰의 시작
메리는 결코 자신을 스코틀랜드의 군주로 생각한 일이 없었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녀가 평생 꿈꾼것은 화려한 프랑스 궁정과 잉글랜드의 후계권이었죠. 이는 마침 후사를 보지 않을것이라 선언한(혹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잉글랜드 전성기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 충돌할 계기를 마련합니다. 굳이 이때문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형제국가라 칭하면서도 서로의 영토와 왕권을 탐하는 전쟁은 이미 이 섬나라 안에서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막바지에 엘리자베스와 메리 두 사람이 있었죠. 둘의 싸움은 사실 지금 듣고 계시는 부분과 매치시킬수 있을 만큼 호전적이고 적극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교활한 심리전과 외교전이 팽팽하게 맞서 전쟁이라는 실제적 충돌을 피하는데에 급급했었죠. 다만 그렇게도 부정했던것과는 달리 메리 스튜어트는 뼛속까지 스코틀랜드인이었습니다. 활달하고, 민첩하며, 호전적이고 정열적으로 치열한 생을 살다 갔죠. 그 성질을 죽이고 살수는 없었는지, 메리의 전쟁은 대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치뤄집니다. 첫 남편이었던 프랑소와 2세가 죽은 뒤로 메리에게 구혼하려는 경쟁이 다시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iii. cantabile - 두 번째 결혼과 첫 번째 살인
헨리 단리의 초상
그러나 많은 열강들의 다툼이 무색하게도 메리는 왕족이지만 자신의 신하뻘인 헨리 단리 라는 미청년과 사랑에 빠져 일사천리로 결혼식을 진행해 버립니다. 바다를 건너 말을 타고 서신을 교환하던 스코틀랜드의 귀족과 다른 국가의 왕들은 순식간에 닭 쫓는 개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른 의미에서 메리와 단리의 결혼을 방해하려던 엘리자베스 역시 우스운 꼴이 되어버린 것에 격분하죠. 그러거나 말거나 메리는 처음 느끼는 격렬한 사랑의 감정에 휩싸여 대신들의 걱정을 살 정도가 됩니다. 사실 단리라는 사람은 잘생긴 외모 말고는 인격적으로 별로 믿음직한 사람이 못 되었습니다. 다만 그의 할머니가 잉글랜드 왕실인 튜더가 출신이라는 점이 큰 장점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가 그토록 방해했던 것이었습니다. 주변과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단행한 결혼은 결국 파국으로 끝을 맺고 맙니다.
모든 일은 우유부단하고 심약한 단리의 오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구교를 믿는 여왕의 측근에 역시 로마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 출신인 리치오가 알짱대고 있으니 귀족들 눈에 얼마나 거슬렸을까요. 그래서 신교를 믿는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이 단리의 귀에 여왕이 리치오와 간통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흘러들어가게 만듭니다. 이쯤이야 다른 죄수들과 묻어가는 정도로 끝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끔찍한 살인극으로 치달은 것입니다. 원래는 하루정도 감금하였다가 시장에서 사형될 계획이었던 리치오는 사형일을 기다리지 못한 단리의 손에 질질 끌려가 스튜어트 성의 한 구석진 방에서 단검에 찔려 죽게 됩니다. 리치오가 숨을 거둔 장소에서 멘델스존이 이 교향곡의 영감을 처음으로 받았다 하니, 이 곡 전체에 서려있는 비극적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이 때 메리는 첫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Act II
i. 두 번째 cantabile - 보스웰
메리의 마지막 연인 보스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단리에게서 떠난 메리의 열정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 새로운 안식처를 찾게 됩니다. 메리의 마지막 연인인 보스웰은 리치오 사건때도 리치오를 몰래 처리한 뒤 창밖으로 뛰어내려 설사 자신이 죽더라도 살인의 증거를 남기지 않는 쪽을 택하는가 하면, 여왕의 정부라는 신분으로서 여왕의 남편을 제거하는 일을 돕기까지 합니다. 사실 처음에 메리는 리치오를 죽인 이후 시름시름 천연두로 죽어가는 단리를 굳이 죽일 생각이 없었으나 보스웰경은 메리보다도 훨씬 대담하고 호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정치라는 복잡한 문제(그리고 보스웰 자신이 왕의 위치에 오르고 싶다는 욕구)가 끼어들게 되는 이상, 메리가 보스웰과 맺어지기 위해서 단리는 아예 제거되어야 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메리와 단리의 아들 제임스가 요람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는 그 순간에 말이죠. 한창 어느 결혼식축제로 무르익어가던 훌리루드의 어느날 밤, 스코틀랜드의 왕이 머물던 방이 정체모를 괴한들의 대포에 의해 폭파됩니다.
ii. 리허설 마크 H - 우울한 행복
자신의 남편이었지만 이제는 애정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었던, 그야말로 성가셨던 존재가 사라지자, 이 이상 불타오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메리의 열정은 보스웰을 만나 더더욱, 홍염을 넘어 검붉기까지 한 색으로 타오릅니다. 단리의 죽음에 대한 의혹조차 무시한채 너무나도 재빨리 결혼식을 올려버린 메리의 귀에는 이 미심쩍은 살해사건에 대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트집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메리가 결혼식을 올린 시점보다 너무 이르게 아이가 생겼음이 밝혀지자, 그러니까, 단리가 사망하기 전에 보스웰과의 사생아를 이미 임신한 상태였음이 알려지자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게 됩니다. 성난 군중은 누구도 메리의 결혼식에 참석하려 하지 않았고, 결국 결혼식은 어느 새벽에 쓸쓸히 치러집니다. 3주 동안의 밀월생활도 여러모로 치열한 시간이 되었죠. 보스웰의 복종과 애정의 표시조차 보스웰을 살인자로 여기는 군중들에게는 절대로 좋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Act III
i. 12쪽 포르티시모 - 몰락하는 여왕
결국 메리는 이 모든 일의 책임을 묻는 재판을 받게 됩니다. 종교적으로 엄격한 스코틀랜드 백성들은 천박한 여왕을 화형시키라며 분노했죠. 화형까지는 받지 않지만 종신징역이라는 화형보다도 고통스러운 판결을 받고 메리는 결국 망명의 길을 선택합니다. 우스운 일이지만 혼자의 힘으로 택할수 있는 망명처라고는 이웃나라 잉글랜드 뿐이었습니다. 호시탐탐 서로를 노리던 상대의 품안으로 들어가버린 셈이죠. 아무리 쉬쉬한들 발각되기 마련인 이 탈출은 결국 메리가 런던 탑에 감금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제 메리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메리는 감금되고 보스웰은 재판을 통해 제거되고 지금은 메리를 대신해 스코틀랜드의 왕인 아들 제임스 6세는 적의 손 안에서 잉글랜드의 왕위를 잇게 될 것이고 둘째아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런던 탑 안에서 수도 없이 복수의 칼날을 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고, 다만 한낱 귀족 신분인 간수의 손아귀 안에서 좌지우지될 운명만이 남았습니다.
ii. assai animato - "엘리자베스여 나를 죽여라!"
메리는 군주로서 처음으로 단두대로 향하게 됩니다. 단두대로 향하는 순간에도 메리는 정신을 놓지 않았습니다. 역사가의 과장일지는 모르나 담담히, 그리고 서슬퍼런 눈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남긴 한마디 후, 세번의 도끼질 끝에 메리 스튜어트의 머리가 단두대 밑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메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메리의 사냥개 뿐이었다고 합니다. 한편 엘리자베스는 메리의 머리가 단두대에서 굴러떨어진 다음에야 자신이 메리를 죽인 것임을 부정하며 메리를 죽인 자들을 향해 길길이 날뜁니다. 두 여왕의 히스테릭하기까지 한 관계가 끝이 나는 순간의 모습이었습니다.
iii. andante come 1º - 죽어서도 고동치는 정열
메리 스튜어트와 제임스 왕자. 아버지인 헨리 단리를 확실히 많이 닮았습니다.
메리는 죽었지만 결국 그녀는 죽음과 맞바꿔 소원 한 가지를 이룹니다. 바로 잉글랜드의 왕위이죠. 그녀의 아들은 그녀가 죽는 순간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에서 잉글랜드의 왕 제임스 1세가 됩니다. 결국 그 권세도 메리의 손자인 찰스 1세에 가서 2세대 만에 막을 내리게 되긴 하지만 말이죠. 중세의 마지막 빛을 꿈꾸며 저물어가는 태양이 스코틀랜드의 메리였다면 새로 뜨는 태양,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의 서막을 알린 것이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멘델스존의 스코틀랜드 교향곡 1악장을 서사적인 느낌으로 메리 스튜어트의 삶과 함께 감상해 보았습니다. 조금은 도움이 되셨나요? 글보다도 이 글을 놓고 함께 의견을 나눌 이번, 다음 연습이 기대되네요. 개인의 삶 말고도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여러 이미지들을 최대한 많이 나눠보면서, 서사적이면서 동시에 서정적인 이 곡의 느낌을 다듬고 다듬어 멋진 하나의 곡을 완성시켜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원래는 일요일 아침에 올려 월요일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는데 조금 늦었네요. 여러분 편히 쉬시고 합주연습시간에 뵈어요ㅎㅎ 더더욱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휘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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