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바에 의하면, 파병반대 여론이 너무 거세져서 공식적인 파병은 국회에서 좌절되고, 결국 특수 정예 비밀요원을 보내서 미국의 파병요청에 맞춰주기로 했다는군요. 그리하여 특수부대(단기사병 포함)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지만, 우리부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즉 근무실적이 나쁜 직원들만을 뽑아 전장으로 보낸다고 한답니다....
저.... 짐싸서 이라크 전장으로 가야할까 봅니다. -_-
-_-
물론 농담이구요.
미국에서 접하게 되는 국내소식이 참 안타깝기만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역대 대통령중에서 가장 가진 것 없이 출발한 사람이 바로 노통이지 않을까 하네요. 그나마 DJ는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초당적 지지가 있었긴 했으나, 노통장은 밖으로 미국, 북한에 치이고, 안으로 거대여당, 재벌, 심지어 검찰, 인권위원회 같은 국가기관에 치이는 걸 보면, 그가 그동안 운신해왔던 스타일과 대통령으로서의 행보가 그리 다르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 미국에서도 반전 목소리는 높습니다. (특히 저희 학교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성향이 짙답니다.) 외국인, 특히 미국인들도 종종 저에게 "왜 한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싸우느냐?"라고 묻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상당히 곤욕스럽기만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노대통령뿐만 아니라, 그의 외교안보 브레인들이 대부분 親美論이라기 보다는 用美論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작정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과제로 삼기보다는, 우리의 안보상황에 맞게 미국을 이용하는 것이 용미론의 요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외무장관인 윤영관 교수는 미국보다는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시했는데,어떤 상황에서도 중국의 동의없이 한반도의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여, 윤영관 교수가 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내심 저는 우리 외교가 보다 다원화되고, 능동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었는데, 정부의 신속한(!) 이라크 파병결정은 다소 아쉬움을 남기네요.
한국인이라면, 그리고 정치가들도 예외없이 대부분 반미감정으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치나 외교는 그러한 반미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국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객관적인 자세로 하는 것이겠지요. 지난 겨울 대선기간중, 노무현 후보는 여중생 사망 촛불 시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이 처사를 두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가 차기 대통령이자 외교권한의 수장으로서, 대외관계에 있어 발생할지도 모르는 정치적 부담을 고려할 만큼 사려깊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명분과 실리를 함께 추구한 성공적인 처사였지요. 그러나 이번 경우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적지 않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역시 많은 사람으로부터 조언도 구했겠지요.
분명히 이라크전 파병은 법적, 도덕적 명분이 없습니다. 실리? 그 쪽을 따져 보면 적어도 죽으나 사나 우리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는 있겠지요. 우리가 너희 미국을 이라크전에서 도왔으니,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 단독으로 처리하지 말고 우리 의견을 받아들여라. 이것이 그나마 얻을 수 있는 실리겠지요. 적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제가 꼬집고자 하는 것은 정치가로서의 노무현 스타일입니다. 그는 이번 일을 너무나도 "투명하게" 처리해버렸습니다. 워낙 그의 스타일이 밀담, 밀거래와 같은, 어쩐지 구린 구석이 있는 것과 거리가 먼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반대자들은 노통이야말로 정치적 밀거래의 대가라고 하더군요. 믿거나 말거나....) 외교라는 것이 뭡니까? 바로 국익을 위해서 흥정하거나 거래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때에 따라서는 그 흥정의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도 막중한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훌륭한 정치가일수록 그런 흥정을 통해 명분과 실리를 얻은 적이 많습니다.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가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맞습니다...맞고요(!) 그러나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할 수단이 오직 파병밖에 없다?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서 군대가 아닌 다른 것을 주면서 미국을 달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노통은 해오던 대로 "투명하게" 조기 파병결정을 내려버렸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정치인은 종교지도자처럼 모든 면에서 도덕적일 수 없습니다.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라면 모르겠지만, 전쟁의 위험이 앞에 있는 상황일수록 상대국에게든 또는 국민에게든 자기가 가진 카드를 쉽게 내보여서는 안됩니다.
노대통령은 파병결정으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영국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로부터 비난받고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행여 국민여론으로 인해 국회에서 파병이 부결된다면, 미국으로부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국민감정, 그리고 국내법상 어쩔 수 없다. 파병하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겠지만, 정장 미국은 노대통령을 자국의 여론도 추스리지 못하는 나약한 지도자라는 시각때문에 북한 문제에 있어서 한국을 배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이겠지요.
대등한 한미관계 구상, 그리고 참신한 외교안보 참모를 거느리고도, 왜 이런 성급한 판단을 내려 스스로를 궁지로 모는지....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오랜만에 이런 글을 쓰다보니... 간결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나 봅니다.
뉴욕에서 윤상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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