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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름 : 방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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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4 - 등록 |
이어서
사실 혁준 형께서 소청대피소에서 안 와도 될 것 같다는 전화를 하셨었지만, 그 이후 거의 1시간 가까이 아무런 소식이 없기에 세 명이 가방 없이 간단히 산책처럼 갔다 오기로 했다. 중청봉을 넘어올 때쯤부터 많은 구름 때문에 시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뭐 중청 능선에서 잘 보이면 정말 멋있긴 하지만 이미 본 적이 있으니까...는 무슨 간만에 전훈 왔는데 이게 뭐야 ㅠㅠ 따위의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다시 중청봉을 넘고 계단을 넘어서 후발대를 만났다. 후발대도 소청대피소에서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신선놀음하면서 천천히 왔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가 들어야 할 가방도 없었다. 이렇게 퍼지는 사람이 없는 전훈은 처음...
결국, 후발대도 모두 무사히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아직은 개방시간이 안돼서 다들 대피소 앞의 평상에 앉아서 재밌게 떠들고 놀고 있었다. 너무 재밌게 놀길래 구경만 했다. 끼기 어려워... 여하튼 적당히 배가 고파지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일단 밥은 망했다. 내가 까먹고 있던 게 있었거든... 미안해 얘들아... 그래도 내겐 비장의 무기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오리 훈제였다. 이놈이 차지하는 무게가 꽤 되었는데, 오리보단 아이스팩이 문제였다. 하지만 오리 600g만이라도 줄이는 게 어디야... 전훈 전부터 공유하기로 약속했던 성훈이네 조와 함께 오리, 돼지를 구워 먹었다. 오리의 맛에 의구심을 품던 아이들도 막상 먹어보자 맛있다며 즐거워했다. 지금까지 실패 or 낙오만 하던 조장에서 오리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원래 인생은 능력이 없으면 템빨이라도 있어야지...
뭐 어찌어찌 저녁을 먹고, 재밌게 노는 아이들을 보다 보니 9시, 소등의 시간이 왔다. 각 조의 상황을 파악하고 내일 산행에 대한 조장모임을 마치고 이것저것 소소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서 자러 들어가니 어느 아저씨 한 분이 코를 강력하게 골면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계셨다. 하지만 역시 단련된 나는 코골이 따윈 무시하고 깊은 잠속으로...
3일 차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밥을 대충 때우고(역시 실패. 지금은 뭐가 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났어 얘들아 미안해...) 나가보니 바람과 안개가 심상치 않다. 풍속이 13~19를 넘나들고, 안개가 하도 심해서 가시거리가 3m도 되질 않았다. 헤드 랜턴 빛이 안개에 산란되어서 옆에서 그게 다 보일정도. 혁준 형과 랑님의 표정이 심각해지셨다. 대청봉은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기에 시야도 안 좋은 상황에서 무리해서 올라가다가 강한 바람에 밀려서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바로 스브스 메인 뉴스에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우선 일출은 보류. 다들 다시 재우고 바람, 안개 중 하나라도 잦아들기를 기다리는데 몇몇 용감한 산꾼들이 산행을 시도하는 것을 보았다. 절반은 가다가 포기. 절반은 속행. 목숨 내놓고 가는 것으로 밖엔 안보였다.
결국 대청봉은 포기하고 하산을 하기로 했다. 젠장, 나도 잠이나 잘걸. 이틀동안 합해서 10시간도 못 잤다. 지금 생각해보니 전훈 끝나는 날까지 하루에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잘 버텼다. 좋아, 아직 젊어!! 뭐 여하튼 하산 시작 전 준비운동을 하는데 추위때문에 다들 입고있던 판초가 열심히 퍼덕거리니 마치 알록달록 날다람쥐들을 보는 기분. 바람도 정말 세서 나름 장관이었다.
다시 조별로 하산을 시작했는데 고작 중청봉 계단 좀 내려가니까 귀신같이 바람이 멎었다. 그냥 대청봉 못 가게 하려는 설악산의 심술이었나... 좀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사진도 찍어주면서 내려왔다. 조에서 최후미였던 나는 뒤에 따라오는 조의 조별사진을 찍어줄 때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우리 조원들은 전부 사라졌다. 어느새 "낙오하는 조장을 버려라!"라는 조훈까지 만들어진 상황. 오리 약발이 오래 안 가네... 그보다 산을 내려가다 보니 원래 별로 안 좋던 무릎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아, 어제 너무 무리했구나...
그냥 뒤에서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도 계속되는 통증. 산을 타며 간간히 스트레칭을 했었지만 역시 이미 와버린 고통은 가시질 않는다. 사람들이 에어파스를 하도 사랑하길래 나도 많이 뿌려봤는데 사실 전혀 도움이 안 됐다... 그 와중에 내려가는 길에 다람쥐가 있길래 손을 내밀고 우쭈쭈-를 해줬더니 손가락을 물고 달아났다. 이젠 다람쥐마저...
그렇게 내려가다 보니 희운각 대피소를 지나고, 고통을 참으며 좀 더 가니까 양폭 대피소에 도착했다. 사실 고통을 참느라 잘 기억안나... 근데 세상에, 여긴 분명 공사장이었는데... 하긴, 소청대피소도 공사장이었는데 어느새 잘 만들어져 있었다. 중청대피소도 엄청나게 좋아졌고...(사실 그 냄새를 다시 맡으면서 그 좁은 곳에서 자야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는데 바뀐 대피소는 너무나 쾌적했다.) 여하튼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끓이고 물 채우고 끓이고 물 채우고... 언제나 고통스러운 라면국물 처리. 다행히도 가위바위보를 잘해서 면제. 얘들아 수고 많았다...
선두와 후미의 시간 차이가 좀 있었던 관계로 노닥거리다 지친 우리는 계곡을 향해 먼저 출발했다. 하도 힘들어서 늘어져 있는 날 보고 성준 형이 큰 바위 위의 위험한 못 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주셨다. 여기서 보니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아주 잘 보인다. 껄껄껄. 명당이로구나. 하며 즐기고 있는데 나도 공격당했다. 역시 최 군인... 물에 안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한 세 번쯤 당하고 스무 번쯤 밀어댄 것 같다. 힘들어... 랑님께서 도착하시더니 등산객들이 우릴 열심히 촬영해갔다는 비보를 전해주셨다. 소오름... 이렇게 벌금형을 먹는 건가! 뭐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미 벌어진 일인데... 하며 대범한 척했다. 근데 쫄보라서 속으로 많이 쫄음.
여하튼 즐겁게 놀던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는 무릎을 달래며 겨우겨우 따라가는데 어느새 우리 조의 실세 파괴신 님께서 뒤로 처지기 시작하셨다. 지금껏 당했던 모든 수모를 담아서 낙오자라고 놀렸다. 하하. 어느새 우리 조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은 다 뒤로 처지고 어린 친구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진래와 파괴신님과 나는 숨이 턱턱 막히는 이야기를 하면서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비선대였다. 이전까진 혼자오느라 힘들었는데 같이 오니까 금방... 그러고보니 비선대에도 1등으로 도착했다.
신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카드가 되다니!!) 여유롭게 앉아서 나머지 사람들을 기다렸다. 이런저런 재밌는 이야기들을 듣다가 순진한 아이들에게 금강굴의 20계단 전설을 들려주어서 올려보냈다. 아... 평온하다... 노닥거리다가 주차장으로 출발. 분명 조금만 걸어가면 불상이 보였던 것 같은데, 걸어도 안 나왔다. 조원들에게 코앞이라고 큰 소리 쳤는데... 끙끙대며 겨우겨우 다 내려왔다. 사진을 찍는 아이들을 보다가 가려고 했는데 수연이가 진래와 서정이가 가방을 놓고 잠시 어디를 간 것 같다고 하기에 보니까 익숙한 가방이 둘 있었다. 내가 기다리다가 같이 가겠다고 보내고 기다렸다.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두 명. 가방을 메더니 날 버리고 사라졌다. 나쁜 친구들... 나중에 물어보니, "조장님이 낙오자를 버리라고 하셔서 말을 잘 들은거에요! :)" 그래...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어쨌든 버스에 도착. 드디어 산이 끝났다. 편안히 버스에 앉아서 출발. 중간에 성준 형이 가셨다. 멋있는 직장인...
바다는 멘탈이 많이 부스러져서 생략. 여하튼 재미있는 전훈이었습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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