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 연주회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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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제목 : .... |
1,597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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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름 : 김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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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7 - 등록 |
연주회가 끝난 어느 날 녹두거리 끝 독서실 앞에서 손톱을 바라보았습니다.
손톱 끝은 무대 뒤에서 정성스레 마무리지어둔 대로 매끄러웠고, 빛에 닿은 어느 끝에는 작은 반사광이 어리었습니다.
그러나 손톱의 길이는 벌써 감당하기 힘들만큼 길어져 있더군요.
그 날 문득 합주 후기를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벌써 그 날로부터 2주일 가량이 흘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이 어느 날 문득 매끄러운 손톱 끝의 빛에 이끌려 장문의 글을 적어내렸을거라 생각했는데...
오비연주회 게시판의 시간은 아직도 멈춰져 있네요.
합주.....!
화현회 생활 동안 저를 가장 괴롭혀왔던 이름 중의 하나.
요즘도 합주 하기 싫어하는 후배가 있다더군요.
이해합니다.
저 역시 합주하기 싫어했던 화현회 회원이었으니까요.
제가 맨 처음 화현회에 방문했을 때 95학번 주형이 형이 화현회를 소개해주었죠.
카르카시 연습곡을 뒤적이며, 이런저런 화음을 튕기면서 화현회의 일정이며, 생성 과정이며, 준회원과 정회원 명예회원의 의미 같은 것들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딴따라 기타에 물들어 있던 저는 열심히 그의 왼손과 독보 실력을 확인했고 그가 하고 있는 행위가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기타 연주법과 사뭇 다른 영역이란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러나 정작 그가 밝힌 화현회의 정체성이 중주와 합주에 있다는 사실은 '어휘'로만 기억되었을 뿐 가슴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화현회를 처음 만드신 선배들이 모두 클래식 기타를 연주할 수 있었고 '함께' 연주하고 싶어서 동아리를 만들었다는 사실....
저는 중주나 합주란 연주 형식에 대해 문외한이었습니다.
처음 제게 함께 연주한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사람은 성홍이 형과 수경이 누나였습니다.
둘은 작은 연주회에서 Encouragement를 연주했죠.
그 다음은 인석이 형과 은주 누나.
둘은 연주회에서 피아졸라의 곡을 연주했죠.
중주를 살떨리게 느끼게 해 준 사람은 저의 첫 번째 팀원들이셨던 기혁이 형과 영재 형 그리고 상식이 형....
입을 오물거리며 선율을 연주하던 기혁이 형과 상식이 형의 거친 숨소리가 아직도 기억나네요.
하지만 합주의 즐거움에 관해서라면......
아쉽게도 가슴 깊이 남을만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개인의 존재감을 느끼기 힘든 연주 형식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제 자신의 존재감에 지나치게 메달리는 저의 삐뚤어진 성격 때문일까요?
합주는 늘 저를 암울하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화현회의 정체성은 합주에 있고 정회원이란 합주단 단원으로서의 자격을 말하며, 명예 회원이란 합주단 단원을 가진 채 OB에 이른 자.....
때문에 오디션이란 독주 실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합주 단원으로서의 실력을 보는 것이고...
한 해의 합주를 마치고 나면 오디션 결과와 관계 없이 모두가 정회원이 되는 것이라고....
합주는 제게 의무였습니다.
문득 문득 느껴지는 즐거움이나 뿌듯함은 있었지만 진정 연주자로서의 즐거움은 없었습니다.
여기서 지휘자로서의 즐거움은 논외로 합니다.
그것은 분명 연주자로서 추구하는 즐거움과는 다른 영역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무감으로 합주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화현회 생활이 험난했던 것은 '제가 합주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표현 자체에 많은 부분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OB가 되어서 후배들의 연주회를 몇 차례 구경했습니다.
처음엔 합주를 들을 때면 알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그것은 제가 경험한 합주 경험을 제외하고선 느낄 수 없는 감동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순수한 청중의 입장에서 감동을 느꼈던 연주회는 과연 언제일까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이번 오비 연주회에서도 합주를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저를 붙잡는 아무런 의무감도 없었습니다.
희섭이와 저는 두 줄로 요약된 위와 같은 점에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잠시 들른 써클 룸에서 지휘하고 있는 예완 누나와 연주하고 있는 성홍이 형 그리고 진선 누나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알 수 없이 그리운 감정을 느끼고 그만.....
합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 속에 조심스럽게 합주단에 끼어들었습니다.
재미 없게 될까봐 조바심을 내며 합주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재미 있었습니다.
연주회를 끝내고 다시 한 번 합주를 하고 싶다고 느낀 연주회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결과물이 좋아서는 아니란 사실....
더 잘 할 수 있었고 부족한 점과 개선 가능성을 제 자신에게서부터 몇 가지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저런 핑계로 개선하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으론 일주일에 한 번 기타를 잡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주 연습이 재미있었던 것은 어째서였을까요?
개선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희망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확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역시나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수준의 지휘자의 역량 때문이었을지도...
아니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악장님의 연주 실력 때문이었을지도....
왜냐하면 자신 보다 나은 사람과 함께 연주한다는 것 자체는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기 때문에....
다음 OB 연주회에서 다시 한 번 그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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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여기 만일 후배들도 들어와서 글을 본다면....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듯 한데...
합주나 중주는 화현회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합주나 중주를 거부하는 것은 화현회를 더 이상 화현회가 아닌 것으로 바꾸는 것이겠죠.
만일 클래식 곡을 연주하고 싶지 않다거나 합주나 중주를 하고 싶지 않다면 화현회를 나가서 다른 써클을 만드는 것이 옳습니다.
화현회 YB들에게 많은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믿지만 정체성 자체를 바꿀 자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제가 합주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과 합주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다시 읽다보니 위와 같은 말을 덧붙여야 할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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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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