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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재호형 어제, 아니, 그제 귀국하셔서 새벽에 고생중이시군요. 오랫만에 한 번 뵈었으면 좋겠는데, 체류기간 중에 다른 약속들이 있어서, 잘 계시다 가시라는 말씀만 대신 드립니다. 내일은 처가에 가야하고, 토요일에는 매년 있는 어렸을 적 친구들과의 가족 모임에 가야합니다.
오늘이 초복인지, 중복인지, 복날이라고들 하는 것 같은데, 어디 잘하는데 가셔서 영양탕 한 그릇 곱배기로 곱게 잡숫고 정력탱천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에서는 못하는 일 아닙니까?
참 영양탕 얘기 하나 할까요?
얼마 전에 우리 연구실에 스페인 여자가 방문했는데, 그 여자가 한국에 처음 와서 개고기를 먹어 보고 싶다는 놀라운(???) 제안을 하길레, 반가운 마음으로 이 동네 수소문을 하여 제일 잘 한다는 곳으로 데려 갔읍니다. 그 여자는 그 전날 저녁에 향이 제법 있는 홍어찜도 아주 맛있다며 제법 큰 한 조각을 다 먹었던 사람입니다.
사람들 디게 많았읍니다. 글쎄요, 짐작이 가시겠지만, 당연히 방바닥에 쪼구리고, 다행히 벽을 등받이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앉았는데, 앞에 놓인 테이블은 너비가 겨우 오십 센티미터나 될까 해서, 가운데에 휴대용 까스레인지를 올려 놓으니 가장자리에 남는 공간에는 조그만 보새기 한 두개 놓고나면 숫가락 젓가락 두기도 수월치 않을 만큼 비좁았읍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많아서 겨우 자리가 난 곳이 화장실 문 바로 옆이었읍니다. 주욱 훑어 본 바로는 대개들 교장이나 교감과 함께 온 학교 선생님들, 복덕방 주인 아저씨들, 그리고 개인택시 운전사 아자씨들 같아 보였읍니다. 건너편 벽쪽에 예닐곱명이 모여 있었는데, 깨끗하게 차려입은 젊은 아줌마(제 시력이 안좋아서 찬찬히는 못봤읍니다)가 옆에 예닐곱살 쯤 되어 보이는 딸애를 옆에 데리고서 식사를 하는데, 그 딸애가 엄마가 집어주는 고기를 잘 받아먹는 모습이 좋아 보였읍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제 아버지께서 영양탕을 아주 좋아하시는 게 생각이 났고, 이번 여름에 한번 모시고 가서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이젠 너무 연로하셔서 차타고 이동하시는 것도 불편해 하시는데, 더 늦기 전에... 디게 효자같지요? 천만에요. 이런 생각 오십이 다되어 가는 이즈음에야 처음으로 해봅니다. 쯧쯧.
겉 옷을 걸어 둘 데가 없어서(한국 식당 어디서도 거개 다 그렇다 시피) 한 번 접어서 그 화장실 문간에 비올레타의 옷과 함께 쌓아 두었는데, 옷자락이 자꾸 펼쳐져서 화장실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끝이 옷을 밟지 않는지 두려움과 공포로 노심초사해야 했던 일은 그렇다 치겠는데, 그 사람들 화장실로 들어가고 나오면서 문을 닫을 때 마다, 이상야릇하고 고약하고 특이한 화장실 냄새가 실쩍실쩍 풍겨져 나오고,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우선 제가 거의 환장 하겠고 비올레타 보기 민망하고 그렜는데, 다행인지, 혹은 고맙게도, 비올레타가 내색을 안했읍니다. 안그러면 지가 우철켜. 당장 바르셀로나로 돌아갈껴?
천만 다행히, 명성(?)에 걸맛게, 고기는 정말로 맛있었읍니다. 그러고 보니까 저도 한 삼년 만에 먹어보는 거였는데, 오랫만에 먹어서 그랬는지, 하여튼 이때까지 먹어본 것들 중에 가장 좋았읍니다. 더 좋았던 것은 비올레타가 고기 맛을 칭찬하는 거였읍니다. 아주 맛있다고 하였읍니다. 많이 먹지는 못하더만요. 원래 저녁에는 과일만 조금 먹는데 한국에 와서 기이한 음식들을 만나게 되니 많이 먹고 있다며. 그래도 수육 일인분은 거뜬하게 치웠읍니다. 고기가 뼈다귀에 붙어나오니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해 하는 걸 그냥 입에 물고 손꾸락으로 잡아 당겨 빼면 된다고 말해준 것 말고는, 들깨 양념도 맛을 보며 신기해 하고, 부추 데친 것도 따로 씹어 맛을 보며 좋다는 둥, 자기는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마늘을 많이 먹는 줄 처음 알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읍니다.
고기가 차려져 내온 거며, 자기가 입에 넣는 모습이며, 벽에 커다란 글씨로 씌여 있는 메뉴를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둥, 흥미있어 하는 모습이었읍니다. 아무래도 네명이서 수육 사인분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져서 삼인분을 추가했는데, 비올레타도 한몫 거들었읍니다. 네명 식사에 이십만원이나 들은 게 좀 아쉬웠읍니다만, 정말로 고기맛이 좋았고, 이국에서 온 젊은 여자도 즐겨했던 것 같아서 좋았읍니다. 돌아오는 찻속에서 네가 원하면 내일 점심에도 또 먹으러 갈 수 있다고 했더니, 정말로? 라며 반색을 했는데, 나중에 우리 연구원들에게들은 이야기로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수미 누님, 또 제가 글을 길게 쓴다고 나무라지 마십시요. 그동안 하도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지치고 피곤하여 의욕상실 정도가 아니라, 의욕 완전탕진입니다. 그러니 영양탕이라도 한그릇 해야 할 지경이겠으나, 그마저도 의욕이 나질 않습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서, 아침부터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읍니다.
서울에 어디에 그렇게 영양탕을 잘하는 곳이 있는 지 모르겠네요. 경환이한테 물어 보면 잘 알겠지요. 아 참, 서초동 법원 검찰청사 앞에 한 건물은, 몇 층인지는 모르지만, 전체 건물이 온통 영양탕 전문점들로 차있다면서요?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그렇게들 많이 몰려 있는게 사실이라면 그 동네 가시면 실패는 안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 한 번 뵙게 되기를!
그 때까지 서로들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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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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