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시물제목 : <돈의 인문학> 저자 김찬호 선생님 대화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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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름 : 문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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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8 - 등록 |
저는 대화록을 쓸 운명인가봅니다. 이번에 실용문의 분석과 작성이라는 수업을 듣는데, 조별 과제로 저자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돈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고 저자이신 김찬호 선생님을 인터뷰 했는데, 제가 대화록을 작성하였네요.
아직 인터뷰 형식으로 작성한 기사는 아니고, 대화 내용을 그대로 담은 겁니다.
녹음 들으면서 한글 파일로 옮기다보니, 좋은 내용이 꽤 있어서요. 경제학, 인문학 뿐만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이 선생님의 주관이 강하지만요.
여튼 화현인들에게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이렇게 누군가를 인터뷰해본다는 일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아서 공유해봅니다.
사실 6시간이나 걸려서 대화록을 썼는데 그냥 과제 작성하고 말기엔 아까워서요.
레슨법 모임 일지로 단련된 청해 스킬....로 옮겨 적었습니다.
분량은 A4 용지 27쪽, 원고지 193.5장 분량입니다.
시간이 많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 분만 보세요.
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돈의 인문학’ 김찬호 선생님 인터뷰 대화록
(...)
선생님 : (책을 읽고) 경제학과 학생들이 많이 충격 받는다고 하더라고, 경제학에서는 그렇게 다루지 않으니까.
경제학과라고 그랬지?
Q : 네, 그런데 전 지금 정치경제학 그 쪽도 수강하고 있어서..
선생님 : 그러면 좀 익숙하겠네.
질문이 많아요?
Q : 대충 뽑은 건 이 정도입니다.
선생님 : 그냥 물어봐요. 자연스럽게, 보고 하면 이상하니까. 꼭 그 순서대로 안 갈 수도 있고.
Q : 첫 시작이 되게 애매하네요(웃음).
Q : 그러면, 책을 쓰시게 된 계기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선생님 : 책에 한 부분 이야기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 때문에 썼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치와 가격에 관계는 워낙 인류학에서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고, 인류학 강의를 하면서 경제 쪽을 언급하다보면 결국 돈 문제로 많은 게 귀결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거 하나에다가, 내 책에 썼지만, 개인적으로 외부 강의를 많이 하면 강사료라는 게 항상 책정이 되는데, 그걸 나한테 물어본단 말이야. 그럼 내 강의 값을 어떻게 매겨야 될 지, 그게 고민이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문제지. 적정가라는 게 매겨질 수가 없는 거지. 예를 들어서 모든 게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내 외장하드가 있는데, 그 값을 어떻게 매길까. 그냥 하드 값을 매기는 게 아니라 거기 있는 콘텐츠에 값을 매긴다면? 다른 사람한테는 아무 의미는 없지만, 누가 그걸 돈 줘야지 돌려주겠다고 한다면, 내가 얼마까지 줄 용의가 있느냐. 최소한 2000만 원 까지는 줄 것 같아요. 백업을 안받아놨다면. 받아놨으니까 그럴 일은 없는데(웃음), 내 모든 것을 거기 담아 놓은 거니까. 10년 정도를 여기 쌓여있는데, 그건 2000만 원 일수도 있고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최소한 그 정도는 난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냐면 그 돈을 가지고도 회복이 안 되니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돌아보니까 (쓰게 되었고).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이 점점 갈수록 돈 때문에 벌어지고, 그게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심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이 사회와 사람의 본질을 파헤치려면 돈을 피해갈 수 없겠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 돈을 향해서 움직이는 걸. 돈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돈을 통해서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 이런 게 인문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되겠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면 거의 연구된 게 없고. 짐멜의 ‘돈의 철학’이라는 책이 아주 오래 전에 나왔는데 최근에 다시 번역되었다고 하더라고. 원래 번역은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번역이 아주 나빠서 내가 못 읽었는데, 뭐 그 책 말고는 없거든요.
이렇게 중요한 문제인데 인문학에서 죽음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전쟁이라든지, 종교라든지 수많은 것들을 다 다루면서 돈에 대해서는 거의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이건 내가 짚어야겠다 싶어서 손을 댄 거죠.
Q : 저는 경제학부니까 돈을 그냥 거래를 매개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현실에서는 정말 선생님께서 책에 쓰신 대로 극적이잖아요. 그런 걸 인문학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게 와 닿아요.
선생님 : 경제학에서는 돈은 자명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잖아. 인문학이라는 건 항상 전제를 의심하는 거니까. 자명한 게 없지 이 세상에.
Q :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궁금한 게, 이건 저희가 준비한 건 아닌데, 가치와 가격 사이의 차이를 언급하셨잖아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이 가치가, 교수님이 생각하는 가치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선생님 : 그 가치라는 것은 도덕적 가치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가치 있는 것. 그거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죠.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 그것이 다 가치죠. 동물들한테는 그 가치가 너무나 분명한거야. 먹는 것. 짝. 서식지. 이 세 가지 밖에 없거든요. 인간은 그게 복잡하다는 데 문제가 있죠. 가치라는 건 추구하는 것이에요.
동물도 추구하고, 식물도 추구하는 게 있지. 식물한테는 햇빛과 물, 이런 것들이 가치 있겠지. 그리고 나비들이 날아와서 씨를 퍼뜨려주는 것, 그런 것들이 다 가치라고 식물들한테는. 식물들이 바라는 것이고. 모든 생명체는 자기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거든. 최대한, 거기에 도움이 되는 것이 가치지.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거지. 자기 생명을 희생시켜가면서도 어떤 걸 추구하잖아요. 목숨 무릅쓰고 성형 수술도 하고, 종교적 이상을 위해서 자살도 하고. 그런걸 보면 인간은 추구하는 게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하다고. 근데 그게 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가치가 전혀 다른 거지. 누구한테 가치 있는 것이 누구한테는 전혀 그렇지 않고, 미술품 예를 들었듯이.
그건 가치가 뭐냐고 이야기하면, 그건 사람마다 다르고, 추구하는 것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죠.
(...)
인터뷰를 잘하려면 준비해온 건 무시하고, 그건 그냥 깔아놓고, 자꾸 그걸 보면 인터뷰를 잘 못하는 거야(웃음). 얘기 듣고서 여기 있는 것 없는 것 계속 꺼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이어나갈 수 있어야 돼. 쉽지 않지만.
제일 인터뷰 못하는 사람이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하는 거거든(웃음). 절대 그럴 수가 없어, 왜냐하면 얘기가 절대로 이대로 갈 수는 없잖아. 완전 뒤에 있는 질문이 앞에 올 수도 있고. 그런 거니까, 편안하게 그냥 이야기 해.
Q : 그럼 선생님께서 가치 있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선생님 : (잠시 고민하시다가) 성취감. 그리고 유대감. 난 두 가지를 뽑을 수 있겠네. 프로이트가 일과 사람이 인간을 완성시킨다고 했는데, 굉장히 중요한 통찰인 것 같아. 뭔가를 하면서 해냈다는 보람을 얻는 것. 내가 그것을 통해서 성장하는, 그런 창조의 기쁨. 노동이 창조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문제가 되지. 또 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사랑. 그러니까 노동과 사랑이야. 두 가지를 얼마나 잘하느냐, 그게 가치지.
Q : 요즘 세대에선 돈 자체를 그냥 가치로 보고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선생님 : 왜 그렇게 되었느냐, 그건 간단해요. 그런 기쁨을 못 누렸기 때문에. 진정한 유대감과 성취감을 못 누린 채 욕망만 커진 거지. 그 욕망이 뭐냐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 그것만 늘은 거야. 유대감이 변질된 거지. 유대감을 통해서 충분하게 충족될 수 있는데, 있는 그대로 서로 인정해주고 이어질 수 있는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돈이라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해지냐면 돈을 통해서 자기가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어요. 돈이 힘이기 때문에. 힘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있거든. 권력이 있거나, 예쁘거나, 예쁜 것도 힘이야, 매력이잖아. 권력, 재력, 매력. 이것 중에 재력이 제일 쉽게 획득이 돼요. 권력, 얻기 힘들어요. 매력도 오래 걸려요. 그런데 성형 수술도 결국 돈으로 하는 거잖아. 돈을 통해서 가장 힘을 얻기 쉽기 때문에, 다른 힘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힘을 추구하죠. 그 힘이 남을 지배하는 힘일 수도 있고, 함께 나누는 힘일 수도 있어요. 이 나누는 힘을, 나눠서 더 크게 만드는 힘을 경험하지 못한 채로 서로 우열을 가루는, 그런 힘만 추구했잖아. 그러니까 늘 불안한거야. 내가 눌리지 않을까. 내가 못난 사람으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무시당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려면 힘이 있어야 되는데, 돈이 제일 만만하거든. 다른 힘은 얻기 어렵기 때문에.
Q : 누가 저에게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으냐고 물으면 그냥 잘 먹고 잘 살려고 이렇게 대답했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그 기저에는 타인과 좀 비교하려는 심리가 깔려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얼마나 더 잘 먹으려고. 먹는 것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아 우리가. 한 끼에 5만 원씩 매 끼마다 먹는 것도 고역이야.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그냥 비유적인 얘기지 진짜 먹는 것에 대한 욕망이, 배고플 때는 중요하지만, 먹는 것에 대한 욕망을 다 그렇게 추구하느냐 그렇지는 않거든.
그걸 한번 분석해보면 그 욕망에는 궁극적으로 다 사회적 욕망이야. 생각해봐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이 없는 곳에 살라고 그러면 할 수 있겠어요? 아주 극단적으로 얘기해볼게. 서울 땅 다 줄게, 조건이 있어, 서울에 아무도 안살아. 그래도 그 땅 가질 거야? 이게 인문학적 측면이거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상상은 가능하잖아. 어떤 이유로 해서 사람들이 다 떠나갔어. 아무도 살지 않아. 그 땅을 내가 갖는다, 나무를 키워본다든가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일 할 사람도 없다, 내가 다 해야 한다. 그러는 순간,
그러니까 이 지구상에 나 밖에 없다고 하면 돈이 아무 소용없잖아. 인간의 욕망은 다른 동물과 달리 사회적인 욕망이 너무 큰 거죠.
Q : 돈이란 결국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그 돈으로부터 만족을 얻으려면 타인보다 많아야한다는 것이군요.
선생님 : 그렇죠. 돈 자체가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을 혹하게 하잖아. 사람들이 부러워하잖아. 두 가지야, 돈을 가지고 행사해서 얻는 힘이 있고, 돈 자체가 많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있잖아. 세 명중에 한 명이 갑자기 십 억 정도 생겼다고 생각해봐(웃음). 그 돈을 쓰기 이전에 저 사람이 십 억이 있다는 것만으로 괜히 주눅 든다고. 그게 기분이 묘한 거지.
돈이 상당히 종교학적으로 접근될 만 한 주제에요 그런 면에서. 쓰지도 않았는데 작동하잖아요. 그게 왜 그러느냐, 믿음이기 때문에. 저 돈은 대단한 거다, 저 사람은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다, 인기 있는 사람 앞에서 끔뻑 죽는 거랑 똑같아요. 인기 있는 사람이 뭔데.
인기 자체가 어떤 경우도 있어요? 그 사람 왜 유명하대? 유명해서 유명하대. 이런 경우도 있어요. 말이 이상한 것 같지만, 그냥 유명해서 더 사람들이 왜 유명한지 몰라. 그냥 유명하다니까 사람들이 더 보게 되고 더 보니까 더 유명해지는 거지.
왜 인기 있는 사람에게 우리가 끔뻑 죽냐고. 얼굴 많이 알려진 사람 앞에 가면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려울 것 같고 그렇잖아요. 그 사람이 정말 육체적 힘이 있어서 때리거나 아니면 반대로 뭘 갖고 있어서 나한테 나눠주고 그런 건 아니잖아. 이건 종교학적인 거고 신화적인거지.
Q : 그러면, 교수님께서는 지금 강단에 서고 계시잖아요. 그럼 현재 20대들한테 돈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선생님 : 갖고 있느냐고?
Q :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선생님 : 현상을 이야기하는 거야? 질문의 포인트가,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냐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 하냐는 거야?
Q : 어, 둘 다요(웃음).
선생님 : 음 일단, 돈을 지워놓고 먼저 생각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어. 내가 어떤 일을 하겠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겠다, 어떤 사람을 만나겠다할 때, 내가 안철수 씨가 한 얘기로 인용을 했을 거야. 돈을 일단 무시하고 생각해보자. 돈과 관계없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가. 관계없이 하고 싶은 공부가 뭐냐,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거지. 돈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데 일단 돈을 무시하고 생각을 해봐야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거지.
유아 심리학, 칙센트 미하이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이 어릴 때 공부하면서 돈 때문에, 그런 것에 동기부여가 돼서, 미술 같은 걸 하는 친구들이 돈 생각하면서 유명해지려고 미술을 시작한 아이들은 거의 유명한 화가가 안 된대요. 뛰어난 작품들을 만든 사람들을 보면 그런 것 생각 안하고, 정말 몰입해서,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예요. 외적인 동기잖아. 돈을 위한 수단이 됐잖아. 수단으로 하는 일은 사람을 몰입시킬 수 없고 그 사람의 잠재력이 드러날 수가 없어요.
뭘 하든지 자기에 열정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 자기 안의 동기를 찾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여러 가지 경험들을 많이 해야 해요. 여러 가지 관계 속에 자기가 노출되어 봐야 돼. 그런 게 필요한거죠.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기의 능력, 자기의 유능함, 이런 것을 거의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해서 자꾸 돈으로 가는 거야. 결국 자기 삶이 수단화 되는 거죠. 자기 삶이 수단화되면 노예로 사는 거거든. 돈이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도 삶을 수단으로 사는 사람이 많이 있죠.
예를 들어, 오늘 이 만남이 돈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거 한다고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왜 하겠어. 이 자체가 의미가 있으니까 하는 거잖아. 여러분을 만나는 보람도 잇고, 여러분한테 잘 보여서 나중에 이득을 봐야겠다, 그런 계산을 하는 순간 변질이 되는 거지. 그건 이야기하면서 다 드러나, 마음이. 다 알게 돼.
이런 순수한, 도덕적으로 순수한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행위들을 많이 해야 해요. 그런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진짜 유명해저 그 사람은. 돈을 벌어도 그런 사람이 벌어. 그런데 거꾸로 됐지요. 일단 좋아해야지 능력이 생기는데, 좋아하는 게 없이, 좋아 해야 되니까 하는 것 하고 좋아서 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르니까.
그런데 애들이 어릴 때부터 좋아서 하는 일이 별로 없어. 그러니까 위기라는 거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없으니까 자신감이 없는 거지. 좋아하는 일이 없으면 자신감이 있을 수가 없어요.
Q : 저도 이제 3학년이라 진로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하는데, 제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르겠어요. 주변을 봐도, 심지어 서울대 학생들인데도 자기가 잘하는 게 뭔지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많고 진로 선택할 때도 그냥 여기가 연봉 좋대, 해서 다 우르르 그 쪽으로 가고 하는 일이 많아서...
선생님 : 그러니까 자기가 없는 거지. 그 연봉이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데. 20대 후반 30대 초반 연봉이라는 게 10년 뒤, 20년 뒤로 가면 얼마든지 바뀌는 거거든. 중요한 건 자기가 얼만큼 배우고 성장하느냐 그걸 봐야 돼.
돈은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야. 분명히 중요해. 그런데 돈만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을 때도 그렇잖아. 우리가 어느 한 면만 보고 선택하면 안 되잖아. 배우자를 선택한다거나 할 때도. 여러 가지를 봐야지요.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직장을 선택한다 할 때에도, 시간도 중요해. 연봉을 많이 준다고 해도, 그만큼 일을 혹사시킨다, 그건 시간과 건강이 무너지잖아. 가족 관계가 무너지잖아. 또 하나 봐야할 게 내가 거기서 얼마만큼 내 능력을 키우고 성장해갈 수 있냐 그 문제야.
성장 가능성이 없는 그런 직종은 반짝 돈을 벌 수 있을 진 몰라도 그 직장에서 얻을 게 없어. 생각해 봐, 지금 취직 고민하잖아요. 몇 살까지 있을 거야. 기껏해야 50이라고. 앞으로 100살 살아요. 나머지 50년 가까운 세월을 어떻게 준비할거야. 대학생이 그런 생각 아무 것도 안 한다고. 다 막연하게 생각해. 그때 바짝 돈 벌어서 여생을 편안하게, 50년을 어떻게 편안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보낼 거야. 일도 하면서 적절하게 돈도 벌면서 이렇게 누리면서 살아야 되잖아. 그러려면 좋은 직장, 높은 연봉 얻는 그런 능력이랑 인생을 길게 잘 사는 거랑은 달라요.
그런데 학교 교육은 거기까지만 놓고 게임을 시키는 거죠.
Q : 그럼 근본적으로는 교육 제도 자체의 문제라는 말씀이신가요?
선생님 : 제도만의 문제는 아니죠.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강박증이죠. 부모들도 엄격하게 얽혀있고, 모두가 다 제한된 걸 가지고 몰아가잖아. 그게 다인 것처럼. 그 풍토가 문제죠. 그게 그대로 남아있는 한 어떤 제도를 도입한들, 제도가 바꿔주나요. 어떤 제도를 쓰나 다 결과는 왜곡되게 되어있는데.
Q : 20대가 어떻게 하면 그걸 바꿀 수 있을까요.
선생님 : 자기가 결단을 해야지. 또 그게 혼자서 되는 게 아니니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끼리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지.
Q :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라면..?
선생님 : 자기가 통속적인 욕망이나 다른 사람의 눈,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자기 아지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혼자서만 버티기는 너무 어려워요. 두 개가 항상 같이 가야 되는 거야. 자기가 누구인지 내가 뭘 진짜 추구하는 지를 계속 질문하고. 우리는 너무 혼자 있을 때는 너무 고립되어있고 함께 있을 때는 묻혀 있고. 둘 다 문제가 있어.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니야 카톡 때문에(웃음). 함께 있어도 함께 있는 게 아니야. 또 카톡 때문에. 그렇지? 온전히 함께 있지도 않고 온전히 혼자 있지도 못해. 그러니까 늘 불안한 거라고,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둘 다 든든해야 하거든. 혼자 있어도 좋고, 함께 있어도 좋고. 그래서 나다운 삶을 꾸려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게 중요해. 자기의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해요. 안전한 공간이라는 건 내가 좀 쪽팔려도 되는 공간. 잘날 필요가 없는 공간.
Q : 선생님께는 그런 공간이 있나요?
선생님 : 있죠. 내가 잘난 체 할 필요 없는 공간. 간단히 말하면. 내가 쓸 데 없이 허세 부리지 않아도 되는 공간.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런 공간이 있어 있기는. 고등학교 동창 이런 것. 문제는 그게 자기 성장으로 이어져야 해.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옛날 얘기하고..
있는 Being은 좋은데 Doing도 있어야지. Being과 Doing이 항상 같이 가야해. 그것을 통해서 서로 격려도 해주고 자극도 주고 그렇게 하는 게 좋아. 대학 때 그런 새로운 인간관계들을 만들어가는 게 되게 중요해요.
Q : 그러면 화제를 전환해서 돈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책에 설명하신대로 역사적으로 돈이 되게 많은 변화를 겪어왔잖아요.
선생님 : 글쎄요. 돈의 형태가 어떻게 바뀔지는 이제 돈은 이미 가상화폐로 다 가버렸기 때문에... 숫자죠 그냥. 그게 어떻게 바뀌기는 어려울 거고, 엄청나게 바뀐 거죠 이미. 95%가 다 가상화폐로 되어버렸으니까.
돈이 없어질 리는 없고, 글쎄 어떻게 될까. 그건 경제학적인 지식도 있어야 될 것 같고 그래서.. 그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할 것 같아. 왜냐면 여러 가지 변수들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금융 위기를 겪었지만, 그게 결국 버블인데, 빚으로서 돈이 너무 많이 생겨버린 거잖아. 돈이 늘어났는데도 왜 사람들이 돈이 없다고 쩔쩔매는 거야. 빚으로서 늘어났기 때문이지. 돈의 본질이 빚이고, money as debt라는 다큐멘터리 봤어요? 그걸 함께 볼 필요가 있어요. 굉장히 잘 만들었어요. 자막도 잘 달려있고, 그런 걸 보면 앞으로...
이 화폐 시스템 자체가 총체적으로 붕괴되기는 어려울 거예요. 어떤 식으로 유지는 되겠죠. 그런데 유지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파국들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이미 많이 그랬듯이. 그렇게 갈 거고, 일부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부를 다 쥐고 독점할 수 있는 구조가 쉽게 만들어지고 있어서, 어디까지 그게 갈 것이냐, 한 없이 양극화로 갈 수는 없거든. 무한히 갈 수 없는 게, 그게 의미가 없어진단 말이야. 아주 극단적으로 얘기 해봐요. 내가 아까 지구상에 나 혼자만 있고 아무도 없다고 한 건 너무 극단적인 것이고, 덜 극단적으로 얘기해볼게요.
여러분이 우리 사회의 부를 다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다 노숙인 이라고 생각해봐요. 부가 의미가 있을까? 이건 있을 수 있는 상황이거든. 내가 어느 도시에 사는데 나 혼자 그 도시의 부를 다 갖고 있어, 99%를. 1%가지고 나머지 사람들이 나눠 갖는데 거의 노숙인 아니면 쪽방에 살아. 내가 가지고 있는 부는 아무 의미가 없어. 어디에 쓸 거야. 교환할 수가 없잖아. 돈이라는 건 주고받아야 되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줄 게 없는데? 그 사람들한테 내가 존경받아서 뭐할 거야. 돈이 많은 부자들이 저렇게 뷔페라도 해야 되는데, 저 정도 할 사람이 없다면, 극단적으로.
또 그 부를 지키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지. 지금 남미 같은 경우는 CEO를 지켜주는 호신 산업이 큰다고 하잖아. 워낙 CEO들을 납치하고 그런 게 많으니까. 부가 양극화가 더 심해지면 그만큼 고비용이 드는 거고 불안해 지는 거고. 무한히 그렇게 가진 않지만 어느 정도 유지 되겠지.
Q : 어느 정도 균형 상태로 수렴하는 건가요?
선생님 : 그렇지. 겨우겨우 유지되는 상태로 가면서 계속 고통이 이어질 텐데, 그런데 이제 옛날처럼 혁명이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모르겠어, 어떻게 갈지는.
Q : 그럼 책에서 제시하신 지역 화폐나 마이크로 크래딧 같은 건 국소적인 대안밖에는 안 되는 건가요?
선생님 : 그건 전체를 다 바꿀 수는 없는 거잖아. 그건 그냥 하는 만큼 하는 거고, 협동조합 만 하더라도, 예를 들어 스위스 같은 데는 협동조합이 거의 전체의 반 정도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거지. 스위스는 한편으로는 외국 비자금도 많이 숨겨주는 것도 하지만, 내부에서는 협동조합으로 많이 움직여지니까. 스페인의 몬드라곤 같은 것도 주목해서 볼만 한 사례고. 이런 것들이 조금씩 그나마 망하지 않게 거점으로 있는 거고.
세상이 어떻게 될 거냐 물으면, 이거냐 저거냐는 아닐 거예요. 그런 게 조금 있는 만큼 사람들은 사람답게 사는 거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비참한 상태에 놓여있을 거고, 그럴 거야. 선택의 문제죠.
Q : 앞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까요?
선생님 : 어, 글쎄. 질문하는 방식이 되게 막연한 건데, 그런 질문이. 좋은 질문이 아니야 그런 질문은(웃음). 굉장히 막연한 건데, 거기에 내가 의견을 한다거나..
왜냐면 이미 달라지고 있고, 달라질까요는 안 달라진다는 전제가 있는 건데 어떤 식으로건 달라지고, 한편으로는 이게 아니다 싶어서 돈과 관계없는 다른 삶을 꾸리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왜 내가 안 좋은 거라고 하냐면, 너무 일반화된 질문이잖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두 사람도 아니고. 우린 너무 이렇게 하나로 모든 걸 얘기하고 싶어 하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거든. 여러 가지가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거지.
Q : 어... 어떻게 질문했어야 할까요..(웃음)
선생님 : 이것도 다 배우는 거니까.
Q : 교수님은 한국에 대한 돈의 인문학 말고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연구하셨나요?
선생님 : 뭐, 그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할 만큼 여력이 있진 않았고, 한국이 돈에 대한 집착이 제일 크기 때문에 시급했고. 다른 나라를 조금씩 참고는 했고 책에도 여기저기 언급은 했을 텐데 나한테는 한국이 중요하니까 다른 나라는 뭐..(웃음)
Q : 그럼 한국인들이 돈에 그렇게 유독 집착하게 된 원인은 뭔가요?
선생님 : 고도성장. 너무 급성장했지.
너무 굶주려 있다가 갑자기 먹게 되면 비만이 되잖아. 그런 것처럼 돈의 힘이 너무 컸죠. 돈이 많아지는 것과 비례해서 다른 것도 같이 성장해야 되는데 그러질 못했죠.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어떤 여유를 누리거나, 문화라든지. 생존 하나가 너무 급박했는데 그 생존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그 돈이 너무 쉽게 쥐어진 거라고 우리 손에. 우리가 노력한 것에 비해서.
공부를 조금했는데 성적이 확 오르잖아? 그럴 수 있거든. 근데 그게 자기 힘이 아닌데. 우리나라도 경제가 그렇게 성장한 게 우리 힘으로 성장한 게 아니거든. 우리 힘도 있지만, 우리가 지금 옛날처럼 노력한다고 해서 성장이 안 되는 거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옛날에 했듯이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경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건 여러 가지 운이 좋았던 것도 있다고요. 세계 경제가 다 호황을 누렸고, 냉전체제였고, 이런 여러 가지가 맞아 떨어져서 그런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성장에서 우리는 약간 헤까닥 한거죠 한마디로.
돈이 모든 걸 풀어주는 그런 힘이 된 거고, 그러다가 IMF를 딱 맞으면서 아 이게 아니구나 하고 정신을 차렸어야 하는데 거꾸로 더 돈 돈 하게 된 거지.
다른 살아가는데 어떤 다양한 자원이 있는 거 아니야. 내 책의 부제가 부의 근원을 되묻는다잖아. 부가 돈은 아니거든. 부제를 잘 주목할 필요가 있어. wealth가 money는 아니라고. 한 사회의 부는 지하자원도 있고, 그 사회의 두뇌도 있고, 사람들의 사회적인 캐피탈도 있고, 여러 가지가 다 작용하는 거라고.
개인도 마찬가지지. 당신의 자산이 뭐냐 그럴 때 우리는 부동산하고 현금만 따지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지. 건강도 자산이고, 그것도 부야. 내 인맥도 부야. 내 경험과 정서적인 안정감, 동기, 열정 이런 게 다 부거든.
이런 것들이 같이 어우러질 때 위기도 돌파하고 그러는 건데, 우리는 뭐냐면 어느 한 가지만 잘 한거예요.
이렇게 비유해볼까. 우리가 공부를 하는데, 이런 비유가 그냥 막 떠올라서 하는 건데, 성적을 올려야 되겠는데 내가 수학만 잘해. 수학을 했더니 팍팍 올라. 영어 공부도 안하고 다 안했어. 수학 하나만 가지고도 성적이 엄청나게 오르니까 수학만 들입다 판 거야. 그런데 어느 날 수학 문제가 확 바뀌었어(웃음). 영어도 공부 안 해놓고, 성적이 개판됐잖아. 그럼 이때 내가 다시 뭔가 공부를 잘못 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데 계속 수학만 하는 거지, 되지도 않는 수학을. 문제는 바뀌었는데 이미.
Q : 같은 방식으로만 계속 한다는 거군요.
선생님 : 그렇지. 다른 책을 찾거나 공부하는 방식을 바꾸거나 했어야 되는데 계속 그 방식대로 하다가 체육도 안 해서 몸도 허약해지고 그런 거야. 제대로 된 선택이었다면 내가 이것저것 다 해야 했지.
우리 경제가 무너진 것도 그런 거거든요. 다른 게 다 허약하니까 다 무너진 거거든. 여러 가지로, 사회가 투명하지도 않고, 또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기업은 컸는데 그 다음 산업으로 갈 수 있는 부가가치 원천도 없고. 이러니까 IMF 에서도 휘청거린 거거든.
그럼 이제 다시 진열을 정비했어야 하는데 그걸 안하는 거야. 개인도 마찬가지야.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가족 관계가 튼튼한 집은 다시 붙잡고 일어난단 말이야. 그런데 돈 번다고, 오로지 돈 만을 위해서 어른은 돈 애는 공부만 하는 그런 집. 식사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집. 그런 집은 돈에서 펑크 나면 그냥 무너진다고. 기반이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돼, 극단적인 사람들은 더 돈 돈 하게 되는 거지. 왜냐면 다른 게 없으니까. 돈 의외에 다른 걸 경험한 적이 없거든. 돈 의외에 다른 것이 자기에게 행복이나 힘이 된다고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게 고도성장, 압축성장의 비극이에요. 다른 걸 경험할 겨를이 없었어 한마디로.
그러니까 여러분도 학교 다니면서 다양한 자기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없는 거거든, 일류 대학에 갔어도. 이거밖에 없는 데. 자기 직관적으로 알거든, 이게 얼마나 별게 아닌 지. 오래 가는 것도 아니거든.
옛날엔 오래 갔는데, 요새는 오래 가지도 않고 수명은 또 길어졌다고. 두 가지가 안 좋아진 거지.
아무튼 돈이 중요해지 이유는 그런 거지. 급격한 성장과 갑자기 무너진 것.
Q : 지금 생각이 난건데, 제가 돈을 벌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그냥 부모님께 돈 벌어서 효도해드리고 싶다는 의무감이나 또 결혼하려면 이 정도는 모아야 된다는 의무감이나, 아니면 집을 사려면 돈을 모아야한다는, 이런 의무감들이 큰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런 의무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선생님 : 현실적으로 그만큼 고비용 구조인 건 사실이에요. 사회의 안전망도 없고, 부모님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노후에 아무런 준비 안한 채로 나이 들어가시는 분 많지요? 그에 비해서 국가의 복지 체계 같은 건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고. 그러니까 개인이 알아서 준비해야 되잖아. 노인 스스로는 그런 게 안 되니까 자식한테 다 쏟아 붇는 거고. 그러니까 의무감이 당연히 느는 거지.
그거는 현실이야. 현실이고, 느끼는 건 당연하고, 문제는 적정한 선을 정해야 되는 거야. 철저하게. 무리하게 자기가 무한 책임을 질 수는 없을 거고, 그 다음에 돈으로만 그걸 다 해결할 것이냐, 그건 아니거든.
예를 들어서, 부모님 건강만 하더라도, 생각해봐. 나도 부모님이 지금 두 분, 양쪽 다 하면 네 분 다 살아계시는데, 아버지가 87세에요 지금. 내가 바쁘면서도 의식적으로 점점 갈수록 시간을 내서 아버지와 함께 돌아다니고 밥도 먹고 대화를 나누고 그래.
그건 왜 그러느냐. 내가 그거 안하고 아버지 용돈이라도 더 드리려고 돈을 더 벌수도 있을 거야. 나 같은 직업은 약간 자유인 비슷해서 하기 나름이니까. 그런데 아주 경제적 논리만 계산해도 안 맞는 게, 아버지가 외로우면 병이 더 들 수 있어요. 그렇지? 병원비가 더 들어.
난 그런 계산도 해. 아버지 좀 건강하게, 사시는 한 건강하게 사셔야지 나도 부담이 없잖아. 그럼 자식 입장에서는 아버님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병원비를 마련하는 것보다 병이 안 들게 하는 게 더 중요해. 그렇게 다각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
그 부담은 당연한데 부모님의 필요가 뭐냐는 거예요. 부모님한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면 돈으로 다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른데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걸 펑크 내면 돈이 엄청나게 들어요. 건강이 그런 거 아니야 대표적으로.
Q : 그럼 저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고, 처음부터, 우리 사회 자체가 그러니까 돈을 처음에는 목적으로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 목적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선생님 : 한 번에 벗어난 것도 아니고 또 벗어났냐고 이야기하기도.. 상대적인 문제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거야. 돈의 문제는 돈에 대해서 과도하게 우리가 중요성을 부여하고 돈이 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 우리가 흔히 황금만능주의 이렇게 표현하는데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게 아니라, 돈이, 예를 들어서 어떤 한 가지, 지식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죠? 인간관계 문제를 내가 누구한테 상처를 줬어. 아니면 내 친구가 누구한테 상처를 받아서 굉장히 힘들어해. 뭐 실연을 당했어. 얘한테 내가 심리학적 지식을 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어떤 때에는 필요 하지만, 뭐든지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는 위로가 필요한 거고 어떤 상황에서는 밥을 한 끼 사줘야 되고, 어떤 상황에선 함께 걸어줘야 되고, 어떤 상황에선 돈을 줘야할 수도 있어요. 여러 가지 중에 하나야. 돈이라는 건 우리가 살면서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쓸 수 있는 카드 중의 하난데, 우리는 이걸 너무 만능 카드로 생각하다보니까 다른 것들을 아무 것도 준비 안하는 거예요. 만능 카드가 아니거든. 막상 그 카드를 냈는데 교환이 안 돼.
카드라고 하니까 이런 신용 카드도 있지. 이런 카드도 JCB라고 쓰여 있지만 어느 나라 가면 이게 안 통할 수도 있거든. 생각해봐, 비유가 재밌다. 이거 하나만 딱 가지고 나가면 다 통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나라 가보니까 안 받아 이걸. 황당하잖아.
돈이 그런 것일 수 있다니까. 돈이면 다 해결될 줄 알고 돈만 준비했는데 돈으로 다 해결이 안 돼. 건강. 다른 사람과 관계 문제도 있고, 내 보람의 문제도 있고, 그렇잖아. 돈을 벌었는데 사람을 잃었어. 돈으로 사람을 다시 살 수는 없잖아. 친구 대행업 이런 건 있지만 대행이지 잠깐. 내가 돈 줄 테니까 너 나 좀 위로해줘 그러면 위로가 될까? 그렇잖아.
Q : 그러 젊으셨을 때에는 선생님도 돈이 많이 버는 게 목표였나요?
선생님 : 그런 적은 없었어 나는. 우리 세대는 돈을 목표로 해서 청춘을 바쳤던 세대가 아니야. 그런 애들이 이상한 애들이었어. 그건 대학의 분위기였어요. 그 시대 정서였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역설적으로 고도성장기여서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어. 까짓것 나중에 열심히 해서 돈 벌지 뭐, 다들 이런 자신감이 있었거든. 적어도 어느 정도 대학 다닌 사람들도, 고졸인 사람들도 나와서 취업 잘 되고.
그러니까 부가 계속 늘어날 때에는 그렇게 돈에 연연하지는 않죠. 어느 정도 사회적인, 민주화 운동권 그런 게 있어서 돈 밝히면 그건 천한 놈으로 봤어요. 그런 가운데에서도 돈 돈 돈 해야 하는 가난한 친구들도 있었죠. 난 다행히 집안이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돈에 한이 맺히질 않았고, 반면에 이제 다른 삶의 즐거움들을 일찍 알았고. 대학교 다니면서 공부의 즐거움이라든지, 인간관계의 즐거움이라든지.
Q : 그럼 그런 사회 분위기가 언제부터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선생님 : IMF 직후지. IMF 이후 2000년 쭉 지나면서 확 변했지. 내 책에 통계 어디 있잖아.
Q : 아, 그것에 대해서 저희가 또 조사를 했는데, 돈이 행복의 기준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38%가 그렇다고 답했었는데 최근에는 50%로 더 늘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 : 그렇게 더 늘어날 거예요.
Q : 계속해서 늘어나는 건가요?
선생님 : 어느 정도까지는 늘어나겠죠. 100%까지는 아니겠지만. 계속해서 늘어나겠지만, 올라가다가 멈출 수도 있는 거고. 계속 올라갈 수는 없지. 어디까지 갈 거야. 100%는 안 될 거 아니야 적어도(웃음).
Q :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지점이 있을까요?
선생님 : 그건 모르지. 그건 내가 예언자가 아니기 때문에(웃음), 떨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는 있죠. 떨어질 거라고는 누구도 얘기를 못하지. 여러 가지 변수가 있는 거고, 우리 선택도 있고.
Q :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불신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아까 말씀하셨지만 혁명이 일어나기도 어렵고, 이런 상황에서 IMF가 또 터지면 이제 돈에 대한 인식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게 될까요?
선생님 : IMF 같은 게 터지기는 어렵고, IMF는 통화 위기였잖아. 당분간은 우리가 외화 보유를 엄청나게 해놨기 때문에 IMF가 또 터지기에는 당분간은 어려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지만.
차라리 IMF 때에는 나았지. 이런 거라고 생각하면 돼. IMF는 우리 몸으로 말하면 가다가 확 넘어져서 어디가 부러져 응급실에 갔던 거야. 아직 몸은 건강해. 어느 한 부분만 그런 거니까. 건강하다는 게 뭐냐면, 국가 재정이 좋았고, 가계 부채 없었고, 사회적으로 아직 금 모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사람들에게 어떤 의욕과 국가에 대한 신뢰가 있었어요. 국가에 대해서도 그때까지는 신뢰가 있었죠. 그 때 지나고 나서부터 계속 나빠졌지만, 김영삼 정부가 그렇게 지지가 나쁘지는 않았죠, IMF 맞으면서 배신감을 느꼈지만, 정권 탓만 할 수는 없는 거고.
지금은 뭐냐면, 응급실 갈 상황은 아니에요. 지금은 당뇨 같은 거야. 이제 만성질환으로 들어간 거야. 그러니까, 고령화, 가계 부채, 국가 재정, 이런 게 다 나빠지고 있다고.
그러니까 다 불안하고, 불안한데 창의적 잠재력은 떨어지고 있고, 지금 삼성전자 하나 무너지면 그냥 끝나는 거거든.
큰 충격파가 올 가능성은 적어요. 2008년도 지나서는 중국 변수도 있고. 중국이 옆에 있어서, 중국이 지금 세브란스를 높게 치는 것도 다 중국 환자를 겨냥해서 그런 거니까. 엄청난 시장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막 박살나고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계속 돈이 돌 텐데, 돈이 이제 순환이 안 되는 방식으로, 일부 독점된 그런 쪽이 되겠지. 지금 병원만 하더라도 지역 병원 다 죽고 5대 병원만 계속 크잖아. 같은 의사라도 저렇게 양극화니까.
계속 이렇게 가면서 일부 사람들이 다른 식의 게임을 하면 달라질 수 있겠죠. 그런 것 하고 협동조합 같은 것도 굉장히 크고 있거든. 이런 게 하나의 좋은 징조일 수 있죠. 절대적인 답은 아니지만, 그런 건 없으니까. 이 세상에 절대적인 답은 없고, 여러 가지 시도들이 맞물리면서 조금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열리는 거니까.
당분간은 비관적이에요(웃음). 안 좋은 방향으로, 그렇게 마음먹는 게 좋아요. 여러분 앞으로 인생에 적어도 한국, 왜냐면 그 동안 너무 많은 걸 미리 다 해먹었어. 여러분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인데, 윗세대가 너무 많이 해먹었어. 다른 게 아니라 연금만 해도 그렇죠. 지금 곳곳에 4대강부터 시작해서 경전철, 쓸 데 없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죠. 다 적자거든 이거. 돈 쏟아 부어놓고, 건설 회사가 다 챙겨가고. 그건 다 빚으로 남는다고. 공기업들 몇 억 원씩 다 성과급 챙겨가거든. 빚 덩어린데. 그건 국민들이 다 채워야 하는 건데. 다음 세대로 갈수록 그건 더 커지고.
여러분이 나중에 뚜껑 열어보면 선조들에 대해서 윗세대 윗세대에 대해서 엄청난 분노를 느낄 거예요. 지금은 아직 현실에서 잘 느끼질 못하죠. 세대 간의 큰 전쟁이에요. 역사에서 앞 세대가 이렇게 다음 세대를 착취한 적은 없어요. 하다못해 경복궁 같은 것도 생각해봐. 그 당시에 다 사람들이 착취한 것 아니야. 우리한텐 다 부잖아. 돈의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윗세대가 그 당대에는 고생했지만, 다음 세대에 좋은 것을 물려주는 것도 있지. 나쁜 것도 물려줬지 물론, 식민지로 나라 뺏기고 이런 것도 있지만, 돈의 형태로 빚을 넘겨주는 경우는 없었지. 다음 세대에 지금 빚을 계속 넘겨주고 있어, 많은 나라들이.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고도성장기에 너무 펑펑 다 가져간 거야. 다음 세대들을 위해 남겨놨어야 되는데, 긁어서, 빚까지 내서 가져간 거야.
당장 집값 문제가 그렇죠. 전세값. 그 돈이 어디 가냐고, 누군가한테 들어간 거라고. 신혼살림 하는데 그 많은 돈을 왜 내야 돼. 말이 안 되지. 미국도 그렇게 안 낸다고.
그런 현실을 직시해야 돼요. 만만치 않아, 여러분이 사는 미래가.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 사람은 생존력이 있고,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늘 잔혹했고, 자연도 인간 앞에 자비롭지 않았고, 지금 필리핀 봐도 그렇지만.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 산다는 게 고통이다(웃음). 사는 게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하나하나 맞아들이면 견딜 만 해요. 그런데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힘들어. 행복을 포기해야 돼(웃음). 행복이 목표가 되면 안 돼요. 물론 난 어디서 행복을 느낀다 이런 건 있지만, 인간이 왜 행복해야 돼? 고생할 수도 있어요. 불행 속에서 뭔가 발견될 수도 있고. 중요한 건 행복이냐 불행이냐가 아니라 내가 얼만큼 깨닫느냐, 나다운 삶을 사느냐 그거지.
Q : 선생님께서 책에서 ‘우애의 경제’라고 제시해주셨는데 그것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직접 설명을 듣고 싶어요.
선생님 : 경제라는 게, 간단하잖아요. 경제학에서는 그렇게까지 본질을 파악하지 않지. 경제는, 사람이 혼자 살 수 없으니까 협동하고 분배하는 건데, 뭘 협동하고 분배할거냐 에서 최대한 그걸 잘해내면 되거든. 그런데 지금의 경제가 그걸 왜곡하니까. 자꾸 경쟁만 시키고, 경재도 필요하긴 한데 기본적으로 사람이 협동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데, 사냥할 때부터. 그 협동이 본질이 너무 파괴됐지.
그래서 우리한텐 그 협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런데 그것을 부로 연결시키는 것. 기업에서 협동 하기는 하지, 팀별로. 자본가들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죠, 자기를 위해서라도.
우애의 경제는 목적이 그거죠. 내 이익을 최대화하기 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실질적 이익을, 전체는 끝이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경제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 그런 문제죠. 협동조합 같은 경우는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거든, 한 없이 쥐어짜내서. 이익의 무한 추구를 하면 깨질 수밖에 없어요. 누가 깨지든.
Q : 지금 경제학 공부하면서 느끼는 건데 경제학 논문이나 이론서 같은걸 보면 사후적인 이익의 극대화는 확실히 추구하고 수학적으로 보장되기도 하는데 과정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선생님 : 내가 보기에, 경제학은 수치에 너무 연연하다보니까 수치화되지 않는 것,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너무 무시를 하는 거야. 어떻게 비용을 따지냐고. 원전의 cost를 어떻게 따질 수 있겠어. 원전이 싸다? 그거 없어지려면 폐기물 10만 년 걸리는데 그걸 값으로 따질 수 있나? 그러다가 후쿠시마처럼 사고라도 나면 그걸 어떻게 값을 매길 거야.
값을 매길 수 없는 게 너무 많은데 값으로 매겨진 것만 갖고 계산을 하니 얼마나 웃기는 얘기야. 우애의 경제는, 우애. 그런 감정적인 것.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 이런 것 까지도 중요하게 보는 거죠. 그렇잖아, 돈을 잔뜩 벌어놨는데 남는 건 돈밖에 없다. 가정도 깨지고 친구도 떠나가고 건강도 무너지고 그랬다, 그게 뭐야. 경제학에서는 그걸 안 따지지.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소송이 일어나고, 교통사고 일어나고 그러면 GNP는 오르니까. 소송하면 변호사한테 돈이 들어가니까 GNP가 오르지만, 화해 조정하고 그러면 떨어지지. 그게 경제학의 맹점이지.
Q :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궁극적으로는 경제학과 인문학의 서로 협력해서 사회를 보려는 그런 시도가 있어야 되는 거네요.
선생님 : 그렇지 모든 학문이 다 지금 수렴되고 통합되고 그러는데. 어느 하나의 틀, 경제학도 유용한데 그것만으로 보려고 하니까. 예를 들어 우리 몸을, 건강 살피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가 필요하잖아. 혈관만 봐서 되겠어요? 근육도 봐야하고. 골고루 다 봐야 되잖아. CT도 찍어야 되고 MRI도 찍어야 되고. MRI로 우리 몸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잖아.
경제학은 하나의 툴이죠. 그것을 절대화하고 그게 다라고하면 문제가 되는 거지. 무시할 수도 없는 거지만.
Q : 그럼 학계에서는 그런 시도가 많이 있나요?
선생님 : 별로 없지만 행동경제학이 약간 그 확장이죠. 학교에서는 행동경제학 안 가르칠 거야. 행동경제학도 안 가르치고 협동조합도 안 가르치고. 그러니까 경제학과 학생들을 바보로 만드는 거지. 이렇게 협동조합이 많아지는데 협동조합의 협 자도 이야기 안하잖아. 또 자영업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하나도 얘기 안 해줘. 경제학과 나와서 다 무능해지는 거야. 동네 빵집이 왜 망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될 거 아니야, 경영학과든 경제학과든.
내 딸도 경영학과인데, 맨날 밤새서 그런 컨설팅을 자기가 하겠다고, 사회적 기업 마케팅, 컨설팅 뭐 그런. 그런 식으로 학교에서 안 해준다면 해야지요. 현장에 붙어서 연구해보고, 실제잖아요 그건, 실제 싸움판이니깐, 생생한 사례들이기 때문에, 그 두껍고 복잡한 이론을 가지고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에게 할 말이 없다, 이건 잘못된 거지.
Q : 그럼 교육이나 인문학과 경제학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없는 이유는 뭘까요?
선생님 : 그런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 그렇게 안 해도 누가 뭐라고 안하고, 먹고 살 수 있어서. 또 세상에 대한 애정도 없었고. 또 학문, 경제학이 되게 권위주위적인 경향이 있거든. 과학을 흉내 내려고 하다보니까. 2008년 금융 위기 아무도 예측 못했는데 뭘. 그리고 지금 이 난국에 대해서 경제학적으로 설명이 되나? 결국엔 다 탐욕인데. 탐욕이라는 변수를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해서 어떻게 설명이 안 되지. 오히려 헤인즈 같은 사람을 다시 봐야지. 광기라는 것에 집중했잖아.
Q : 혹시 책을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나 직업을 어떻게 잡으셨나요?
선생님 : 그런 건 안 잡아. 나는 그런 걸 한 번도 염두에 둬본 적 없어요. 내가 공부하고 깨달은 것을 가장 쉽게 한 번 정리해본다 그런 거죠. 나를 위해서 일단.
Q : 그러면 저희 대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뭔가 한 가지를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것을 가져가는 게 좋을까요?
선생님 :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전부 다(웃음).
Q : 한마디로 압축할 수는 없는 건가요(웃음).
선생님 : 돈 의외에 다른 삶의 중요한 요소들에 집중하면서, 두루두루 살펴서 균형 있게 살라. 돈 벌다가 건강 나빠서 죽은 사람은 어떻게 해. 말이 안 되잖아. 그런 사람은 보면, 이건희 씨가 돈을 십 몇 조를 가지고 있지만, 딸은 자살했다고. 딸이 자살할 때 2000억이 있었어요. 2000억을 가지고도 자살한거야.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참 불행한 집에 태어났다고 생각했을 거야. 건강이 나빠서 죽었겠어, 일을 못해서 죽었겠어. 돈으로 안 되는 것 하나 있는 거죠. 뻔한 거죠.
그런 것처럼 삶이 복잡한 건데 너무 간단하게 본다고 우리는. 한편으로는 심플해져야 돼. 쓸 데 없이 복잡해지면 안 되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역설인데, 복잡한 것과 단순한 것은 항상 같이 가. 복잡한 걸 복잡한 것대로 봐야하고 단순한 걸 단순한 것대로 봐야하는데 이걸 반대로 하는 거야.
남의 한 마디 가지고 별 생각을 다 하면서 밤잠을 못자고 이러면 안 돼. 이런 것에 대해선 단순해야 되고, 확인하기 전까진 내가 쓸데없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 반대로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마음일까, 헤아리는 그 심경에서는 복잡해야 되는 거지.
또 내 자신을 볼 때도 내가 진짜 뭘 원하지? 하고 보면 돈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고. 인문학이 주는 성찰은 그런 거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알게 되는 것. 언제 아느냐, 대부분 죽기 전에 알아요. 그때가면, 죽기 전에 돈 많이 못 벌어서 후회한다는 사람 없어요. 임상적으로 그런 거야. 돈 많이 못 벌어서 후회하는 사람 거의 없대요. 대부분 후회스러운 게 왜 내가 그 사람 용서 안했을까, 왜 그 사람과 따뜻한 밥 한 끼 안 먹었을까, 왜 가족들과 산책 안 했을까, 여행하면서 하늘을 한 번 더 바라볼 걸, 이런 거지.
존재의 문제지 소유의 문제는 아니라고. 우리가 그런데도 자꾸 존재를 망각하고 소유로 치닫는 건 이 사회의 큰 기류이고 음모이고, 자본은 그렇게 해야지 돌아가니까, 사람들을 욕망의 노예로 만들수록 자본가들은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노예로 부릴 수 있어. 옛날처럼 채찍질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노예가 되잖아요. 무서운 거예요 이건. 마르크스가 어떻게 보면 참 통찰을 잘 한거야.
인문학이 왜 중요하냐면 어차피 혁명이 쉽지 않고, 사람들이 그 욕망을 거부해야 되는 건데. 나는 명품 안사도 돼. 명품이 아니더라도 나는 자가용 없이 살거든.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입장에서는 나 같은 소비자는 아주 나쁜 사람이지. 차를 한 번도 사본 사람이 없으니까. 이런 것처럼 나는 차에 대한 욕망은 거의 없고 누가 거저 준다고 해도 받진 않을 거거든. 걷는 게 너무 좋은데.
이런 식으로 여러 영역에서 우리 삶을 어떻게 리모델링을 하느냐. 내가 돈을 어디에 쓰느냐가 곧 우리 사회를 바꿔나가는 한 가지 방식이죠. 그게 당연한 거지만. 골프를 치느냐 연극을 보느냐에 따라서 그 쪽 산업이 크고 안 크고를 결정하니까. 연극을 많이 본다 사람들이, 그러면 그 산업이 크고, 그 쪽의 진로가 넓어지고 그런 거잖아. 내가 쓰는 만큼 그쪽 영역에 쓰는 거라고.
그런 의미에서 사교육은 도움이 안 되는 거야. 사교육에 그 많은 돈을 쓰면서 아이들이 학원 강사가 꿈은 아냐. 부모도 그걸 장려하진 않잖아. 그게 웃기는 거라고. 부모들은 열심히 거기에 돈을 투자하면서, 사교육을 스폰서 하는 거지. 돈을 쓴다는 건 스폰서 하는 건데. 그런데 자기 아이는 그 쪽으로 진출할 걸 독려하지 않지. 우리나라 학원 강사가 돈 많이 버는 사람도 많지만 어떤 부모도 우리 아이가 학원 강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얘기는 안 해.
또 남자들이 술집 가서 그렇게 돈을 많이 쓰잖아, 자기 돈은 아니지만. 여전히 많이 쓰고 하는데, 그렇다고 집에 와서 딸한테 야 룸살롱 괜찮더라, 너 취직해봐 이렇게 얘기하는 부모는 없다고(웃음).
연극한다고 그러면 너 라면만 먹고 살래? 라면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누가 만들었는데. 어른들이거든. 자기들이 돈을 안 쓰니까. 접대비의 10%만 그 쪽으로 가도 얘기가 달라지지. 예체능계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야.
경영학과 나와도 되게 할 게 많아. 문화 경영 같은 것. 그런데 사회가 커야죠. 휴대폰 어디까지 만들 거야. 스마트폰도 곡선이 꺾이죠.
Q : 그럼 아까 부모, 자식 얘기 해주셔서 그런데 저희가 이제 부모가 되고 또 선생님께서 교육학을 강의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돈을 부모 입장에서 자식한테 어떻게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선생님 : 돈의 본질을 잘 알게 해야죠. 그 돈이 어떻게 왔고 하는, 지금 우리 가족의 문제는 너무 소비중심이잖아요. 생산이 사라졌잖아요. 노동을 안 하고, 가사 노동도 안 하고. 소비만 하다보니까 돈이 그냥 거저 주어지는 줄 아는 거죠. 용돈을 받아도 그냥 당연시 하고. 돈의 원천,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쓰이는가 하는. 자기의 용돈 관리 같은 것도 그렇고, 돈의 주인이 되는 것, 자기 삶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죠. 거기서 돈이 한 가지 중요한 테마가 되는 거고.
우리가 관리해야 될 게 뭐야, 몇 개 안 돼. 돈, 시간, 건강, 인간관계, 지식. 이런 것들이 다 관리의 대상이지. 경영학과에서 하는 게 다 이런 것 관리하는 거잖아요. 개인한테 그대로 적용이 되지.
그런데 우리는 관리를 잘 안 해.
Q : 사람들이 돈 말고 중요하다는 게 많다는 걸 알아서 깨달음을 얻게 되면 경제 구조 자체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선생님 : 달라지지. 머리로 깨닫는 게 아니라 진짜 자기가 몸으로 느껴야지. 가끔 그렇게 살잖아. 우리가 전혀 그렇게 안 사는 건 아니에요. 어떨 땐 우리가 돈을 쓰잖아. 야 내가 한 턱 낼게. 경제적으로 마이너스잖아요. 뭘 얻지 근데? 유대감을 얻잖아요. 인정을 얻잖아요. 그런 게 있는 거지. 그런 게 없이는 자본주의가 돌아갈 수 없어요.
사람이 금전적인 이익을 100% 추구한다, 그 순간 자본주의는 끝나,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인 원리가 있을 때 살아 움직이는 거야.
생각해봐, 오늘 여러분 온 것 돈 내놔 그러면 뭐가 돌아가겠어. 길 가다가 외국인이 길 물어볼 때, 그런 황당한 뉴스도 봤어. 길 물어봤는데 가르쳐주고 돈 달라고 그래서 싸움 났대(웃음). 세상이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 모든 게 다 화폐로 거래된다고 생각해봐. 그 순간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안 굴러가게 되어있다니까.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인 게 어디에선가는 있어야 돼. 근데 이게 과도하게 팽창하면 이때부터 삐걱거리는 거죠. 비자본주의는 두 가진데, 자연하고 사회적 분배라고, 마음 이런 것.
자본주의가 튼실한 나라는 그런 게 잘 되어있죠. 숲도 보존하고 함부로 돈 된다고 해서 시설 짓고 이러진 않잖아요. 관계도 마찬가지고, 미국이 얼마나 자원봉사 많이 해. 미국이 자본주의 첨병이지만 미국을 움직이는 힘은 농업, 자원봉사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거든. 자원봉사는 비자본주의죠. 그런 게 없으면 자본주의를 지탱할 수가 없어.
Q : 지금까지 말씀하신 게 다양한 사례랑 비유가 많이 사용하시는데요, 책에서도 달을 판매한다든지 하는 사례가 되게 흥미로웠는데, 그런 것들을 저희가 글 쓰는 입장에서 보면 진짜 사례하나도 저희는 생각하기 힘들거든요.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해내시는지요?
선생님 : 생각이 아니라 사례는 모으는 거잖아. 비유는 내가 생각하는 거지만. 사례는 생활화 되어야죠. 내 나름대로 그런 걸 수집하는 방식이 있고. 계속 관리하고. 대단한 게 아냐,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거지.
찾다보면 예를 들어서, 난 신문을 여러 가지 보는데, 가방 안에 보면 신문이 이렇게 많아요. 이게 다 찢어서 가지고 나온 거야. 신문 그대로가 아니라 필요한 건 다 찢어가지고 나와. 그럼 집에 가서 버릴 건 버리고 다 분류해. 일부는 사례가 될 만한 좋은 아이디어는 다 정리해서 메모하고. 이걸 뭐 한 20년 하고 있으니까.
수첩을 보면, 내가 다 메모해놓거든. 신문 스크랩만으로 다 할 수는 없으니까.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넛지 마케팅 이런 거 알아? 아프리카에서는 비누 속에 장난감을 넣어놔. 이러면 아이들이 손을 안 씻을 수가 없어, 장난감이 갖고 싶어서. 뭐 이런 거. 이런 사례들을 적어놔. 잊어버리니까.
이거는 노하우가 아냐. 노하우가 약간은 있지, 그래도 자기가 습관들여서 성실하게 하다 보면, 이건 1~2년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한 5년 이상 해야지.
Q : 뭔가 주제를 가지고 모으는 게 아니라 그냥 모으는 거군요.
선생님 : 일단 모으고 그걸 주제별로 분류하지. 그런데 글을 쓰다보면 딱 사례를 보면 알지, 이건 언젠가 써먹을 수 있겠다 하고 거의 판단이 되지. 그래서 일단 분류 안 해놓은 것도 많아. 어설프게 분류하는 것보다 분류 안 하는 게 나아. 왜냐면 못 찾아 나중에. 서류, 폴더 만들어놓고도 자기가 못 찾잖아.
Q : 혹시 앞으로 계획 중이시거나 지금 집필 중이신 책이 있나요?
선생님 : 지금 쓰는 책은 모멸감이라는 책. 감정 문제를 담고 있어. 전혀 다른 주제로. 나는 계속 이것저것 막 튀어 다니니까. 하나에 안주하지 않아. 약간 떠돌이 같은 느낌으로.
Q : 그러면 이 돈의 인문학이 칼럼 형태로 신문에 연재된 걸로 알고 있는데, 마감은 원활하게 다 하셨나요? (웃음)
선생님 : 나는 그 한 가지 신념이 있는데, 적어도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마감은 어겨본 적이 없어요.
Q : 정말 글이 안 써질 때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선생님 : 글이 안 써질 것 같으면 그걸 안 하지. 어느 정도 가늠이 되니까, 이 정도로 견적이 나오면. 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미리 써 놓죠. 마감 시간에 몰려서 쓰기보다는. 그게 몰입의 힘이에요.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겠다고 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늘 여기에 몰입을 할 수 있는 거지. 충분하게 준비해놓고 내가 하겠다고 그러지. 내가 이런 주제를 하겠다고 할 때에는 어느 정도 이미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글이 안 써질 것 같으면 그랬지.
프로들은 그런 게 있어야지. 자기의 한계를 잘 알고 부도수표를 남발하면 안 되잖아(웃음).
Q : 저희가 지금 수업에서 미디어시평이라고 해서 칼럼 같은 것을 쓰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떤 조언 같은 걸 해주실 수 있나요? 원고지 8장 정도로..
선생님 : 어떤 조언을 줄까? 뭐가 필요해?
Q : 저희가 초고를 냈는데, 재고를 내야 하는데 혹시 뭐 다시 쓰는 과정에서 좀 더 잘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선생님 : 잘 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딱 있을까. 좋은 글쓰기에 대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잖아. 글쓰기 전략이라든지 거기 보면 좋은 글이 뭔지 알려주잖아요. 나도 지금 막 글을 고치고 있는데 나는 글을 이렇게 많이 쓰면서도 맨날 써놓고 이게 글이냐 싶을 정도로, 내가 다 뒤집어엎어. 안 좋은 글이 이런 거야. 내 글을 가지고 이야기 할게.
1장의 첫 문장이 이래. 혁신을 거듭하는 과학기술은 21세기 인류의 삶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고 있다. 이게 안 좋은 거야. 뻔한 얘기거든. 의외성이 있어야 돼 좋은 글은. 첫 문장에서 결판이 나요. 이게 뭐지? 해야 하는데 이건 전혀 호기심이 안 당기는 거예요 써놓고. 뒤에 가서 로봇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썼는데 쓸 때는 몰랐어. 사례들이 그래서 좋은 거야.
이런 게 있어, 2007년 7월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러면 이제 읽고 싶잖아. 뭐지 이게 하고. 그런데 우리가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 알아. 그걸 뉴스 이상으로 들어가야지. 좋은 글은 너 이거 몰랐지 하고 나와야 되거든. 사건은 다 아는데 얘가 왜 죽였지? 그건 모르거든. 그래서 쭉 글로 들어가는 거지.
이런 게 내 얘기가 아니라 수업 시간에 이런 걸 배웠을 거라고. 굉장히 심플해야 되고, 시각화할 수 있으면 더 좋고. 그리고 뻔한 얘기하면 절대 안 되고.
강주만 선생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막판에 천사 되기라고. 하나마나한 이야기라든지 막연한 이야기. 이런 글도 안 좋은 글이야, 내 글을 갖고 비판을 할게. 마음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살피면서 그 뿌리를 새롭게 다지는 일, 진정한 힐링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이런 게 진짜 안 좋은 문장이야. 이것을 이제 강주만 선생이 막판에 천사 되기라고 한거야. 좋은 얘기로 슥 마무리 한다고. 좋은 얘긴데 별로 감동도 안 오고 상투적인 것.
글쓰기는 끊임없이 자기와 대결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글을 써 놓고도, 내가 이걸 몇 번을 고친 건데 다시 다 엎었어. 완전히 다 무시하고 밀려고. 고치고도 또 날려버려. 싸움이야 싸움,
Q : 그럼 글 쓰실 때 얼마나 걸리세요?
선생님 : 그때그때 다르죠. 잘 풀리면 하루에 원고지 50매까지 쓰고. 문제는 썼다는 게 중요한 게 아냐. 쓰면 뭐해 다 날려버리는 걸. 몇 매 썼다는 건 중요하지 않지.
Q : 지금 강의하시는 내용은 책이랑 많이 연관이 되나요?
선생님 : 그렇지. 강의와 연결을 해서 돌아가는 거니까. 또 책을 쓰면 강의를 거기에 대해서 하게 되고. 강의하다보면 또 새로운 주제가 나오니까 그걸 또 책으로 쓰고.
Q : 그럼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이랑 얘기하면 거기에서 다시 영감을 얻는 경우도 있겠네요.
선생님 : 그렇죠.
Q : 수정을 이렇게 많이 하시는데 혹시 돈의 인문학은 이미 출간이 되었잖아요? 혹시 거기에서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나 바꾸고 싶은 내용이 있으신가요?
선생님 : 바꾸고 싶은 건 뭐 많진 않은데, 추가하고 싶은 건 오늘 했던 얘기들도 추가할 수 있지. 벌써 2년 넘었으니까. 강의 하다가도 나오는 아이디어도 있을 수 있고. 추가하고 싶은 게 있어서 다른 책에 쓰는 거죠. 이번 책 쓰면서도 돈 얘기 두 챕터가 또 들어가. 그건 제목만 다르지 거기 있는 내용이 이어져요. 내 책이 그래요. 계속 내용적으로 막 얽혀요.
Q : 그럼 언젠가 돈의 인문학II도 볼 수 있는 건가요? (웃음)
선생님 : 그럴 수도 있는데 가능성은 적은 게, 이미 다른 주제에서 다 풀어버리기 때문에, 어떻게 프레이징 하느냐의 문제인데, 이걸 이렇게 뽑을 수도 있고 저렇게 뽑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돈으로 한 번 뽑으면, 난 또 뽑기가 싫어(웃음).
Q : 그래도 저는 경제학 학생으로서 이런 시도들이 계속 있어줬으면 해요.
선생님 : 누군가 더 이어서 하면 좋은데, 한 저자가 한 주제를 가지고 II까지 내는 건 쉽지 않아. 왜냐면 그 사람의 핵심 역랑이 거기서 다 드러나요. 그 다음 것이 나오면 되게 힘 빠져요. 1권을 넘어서기가 어려워. 그리고 그거만 계속 하면 모르는데 내가 그런 건 아니니까. 증보판을 낼 수는 있겠지.
짐멜의 책도 읽어보고, 엔데의 유언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도 좋아요. 모모의 작가가 쓴 건데, 화폐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뭐 그런 얘기, 화폐에 유효 기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얘기.
이상하지 않은 게 마일리지 안 쓰면 없어지지. 상품권 유효기간 있지. 그런데 왜 돈에 유효기간이 없어. 돈에 유효기간이 있으면 어쩌냐, 축적을 안 하지. 쓰지. 굉장히 혁명적인 발상이에요. 그래서 지역 화폐들은 그렇게 해요. 지역 화폐에는 유효기간을 둬. 돈이 철저하게 수단이 되는 거야. 갖고 있어봤자 그냥 사라지는데. 우리가 마일리지를 돈이라고 생각 안한다고. 돈이거든 그것도. 신용카드 포인트 없어지잖아. 자기들이 편한 것만 없앤다고. 돈 자체가 그러게 돼요.
Q : 그게 안 되는 이유는 그냥 지금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선생님 : 그렇지, 기득권 세력들이 그걸 할 리가 없지. 가만있어도 돈이 늘어나는데. 실행은 힘들 거예요. 그래도 공부하는 입장에서 우리가 알아 둘 필요는 있지.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꿈을 갖고 있다 보면 언젠가 뭐. 부분적으로는 지역화폐가 그렇게 돌아간다는 건 의미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지역화폐를 점점 더 많이 쓰면, 완전히 대체는 불가능 할 거고, 쓰는 만큼 여유가 생기는 거죠. 돈을 바깥에서 안 벌어 와도 되잖아. 동네에서 내가 화폐를 창출할 수 있잖아. 얼마나 놀라운 거야, 내가 화폐를 찍어낸다는 게.
Q : 저도 경제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특히 화폐에 관심이 많은데, 좋은 정보 많이 얻고 가는 것 같아요.
선생님 : 경제학과 학생들한테 많이 이야기를 해봐요. 화폐에 관한 수업이 있나 있기는?
Q : 네, 그런데 거의 이론만 받아들이기 급급하고 그 전제에 대해서 의문을 던진다거나 그런 시간은 많이 주어지지 않아요.
선생님 : 우선 경제학자들 자체가 그런 공부를 안 하도록 훈련된 거죠.
Q : 가정을 그냥 받아들이도록..
선생님 : 그리고, 대학이라는 곳이, 우리나라의 대학은 그런 점에서 심각하죠. 제도 자체가 그냥 보호해주고 있으니까 버티는 건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경제학자들이, 물론 사회학도 마찬가지고, 학문 자체가 사람들한테 해주는 게 별로 없어요.
그런 불운한 나라에서 태어났으니까(웃음), 세대한테는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 노력하면 되겠지요,
Q : 다음 세대까지는 안 가려나요(웃음).
선생님 : 비관이다 낙관이다 그걸 벗어버려. 그냥 희망 절망이란 말을 지워. 흔히 그런 말을 해 희망이 있느냐고. 의미 없는 질문이야. 희망이 있으면 할 거고 희망이 없으면 안 할 거야? 그렇잖아. 지금 우리 가족이 아파서 누워있어. 희망이 없으면 간호 안 할 건 아니잖아. 가망 있냐는 질문이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이야. 의사한테 살 희망이 있냐고, 희망이 있든 없든 살리려 할 거 아니야.
희망이 있든 없든 관점에 따라 다르고 어느 부분은 희망이 있고 어느 부분은 희망이 없고, 내 개인의 미래를 놓고 희망이 있느냐? 언젠가 죽을 텐데 무슨 희망이 있어(웃음). 죽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잖아. 모든 게 다 끝나는 건데, 그럼 우린 다 절망이지. 희망 절망을 질문하는 것 자체를 다시 의심해볼 필요가 있어. 희망은 굉장히 상투적인 거야. 그냥 사는 거야. 나한테 주어진 일을 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거지.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이 꼭 희망이 있어서 했나.
꿈은 가질 필요가 있어. 꿈하고 희망은 좀 달라.
Q : 이제 시간이 좀 돼서, 마지막으로, 저희가 인터뷰 정리한 게 기사로 웹진에 올라갈 텐데 추가하고 싶은 말이나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선생님 : 책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고, 여러분이 이런 과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여러 사람들을 자꾸 만나보려고 노력해라 라는 것. 학교에서 수업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이 하게 만든다는 거잖아요, 읽기 싫어도 읽고(웃음). 그게 본인들한테 도움이 안 될 때도 있지만.
이런 경험들이, 여러분들이 과제의 일환으로 했지만, 여러분이 기획한 만남은 아닌데, 이런 만남들을 여러분들이 어떻게 기획해서 계속 발표할 것인가. 살면서 지식보다 중요한 게 인맥이야. 내 머리만으로는 해결 못하는 게 너무 많아. 누구한테 부탁하거나 도움을 받으면 되거든. 그런 인맥을 우리가, 물론 그걸 전략적으로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즐거움이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도움을 주고. 우린 너무 끼리끼리 놀아. 익숙한 데에서 머물러 있어. 낯선 곳으로 자꾸 문을 두들겨요. 호기심을 발동해서, 지적 호기심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개방성, 그런 걸 같이 갖고 있어야 돼. 그래야지 인간이 불안하지가 않아. 절망스러운 상황이라도 우리가 불안하지 않아야 되는 거지. 의연하게. 사형장에서도 의연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거고, 온갖 것을 다 가지고도 벌벌 떠는 사람들이 있는 거니까. 사람은 당당함으로 살아야지. 우리 시대는 여러 가지로 사람을 비굴하게 만들고 있어. 어떻게 하면 비겁하지 않게 살 것인가, 그게 중요한 거지.
Q :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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